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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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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딘가의 중점에 존재하는 너와 나의 이야기 (To. S) 너와 나의 인연은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린 2학년에 처음 같은 반 친구로 만나 고3까지 같은 담임선생님을 두고 한 장소에서 같이 수업을 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너의 첫 인상은 약간은 중성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숨길 수 없는 장난끼 어린 얼굴과 초롱초롱한 눈빛을 가지고 있는 아이였다. 우린 사실 절친은 아니었다. 시시콜콜 모든 걸 공유하고 붙어 다니는 절친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데면데면한 사이도 아닌,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그런 사이였다.너와 나의 공통점은 둘 다 체육을 잘하고 좋아했다. 피구공을 잡으면 피구왕 통키로 변하는 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너를 맞추고자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강속구를 던져도 어찌나 다람쥐 같이 잘도 피하던지. 그러고 보니 너는 참 잘 달렸다. ..
나의 키다리 아저씨, 행복하세요. 고아원에서 지내는 주디는 매달 편지를 보내는 조건으로 익명의 후원자로부터 대학교 진학을 후원 받는다. 주디의 후원자는 주디가 쓴 글을 읽고 선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그녀를 후원하는 조건으로 매달 편지를 보내라는 조건을 내건 것이다. 후원자의 이름과 얼굴을 모르는 주디는 현관에서 본 그의 기다란 그림자를 보고 키다리 아저씨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주디의 키다리 아저씨 같은 존재가 내게도 있다. 일용할 양식을 늘 후원해 주며 인생 선배로서의 노하우를 전수해 주는, 내 인생을 항상 응원해 주는 (그림자만) 키다리 아저씨 L. 주디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난 내 키다리 아저씨의 이름도 알고 얼굴도 안다. 다른 점은 또 있다. 주디는 대학에 진학하고 매달 키다리 아저씨에게 학교 생활과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
서울숲의 나목을 바라보며 봄날을 기다리다 살면서 취향도 변하듯 좋아하는 계절에도 변화가 생긴다. 어릴 적 누가 나에게 무슨 계절을 좋아하냐 물어보면 망설임 없이 겨울이라 대답했다. 겨울은 내가 태어난 계절(비록 가을의 끝자락에 살짝 걸쳐 있긴 하지만 반올림하기로 한다)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새하얀 눈과 스키장이 좋았다. 매년 겨울 방학엔 가족끼리 강원도의 한 스키장에 놀러 갔는데 그 추운 겨울에도 신나게 슬로프를 휘젓고 이내 출출하면 갓 구워진 츄러스를 한입 크게 베어먹는 즐거움이 가득했다. 제 아무리 맹렬한 추위라도 그땐 추위보단 행복감을 더 크게 느껴서인지 겨울이 꽤나 낭만적이라 생각했다.하지만 지금의 난 겨울을 낭만적이라고 느끼기엔 몸이 몹시 힘들어졌다. 살갗을 찢고 맹렬히 내 몸속으로 파고드는 한기, 엘사 마냥 내가 만지기만 하면 모든 게..
사치스러운 삶과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본 설날 “나는 사치스럽게 살기로 했다. 내가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면 그게 사치스러운 것이다. 나에게 그 사치는 좋아하는 작가, 감독의 작품을 돈과 상관없이 하는 것이다.” 배우 윤여정 선생님이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한 말이다."나에게 사치란?"그렇다면 나에게 사치스러운 삶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시간의 제약 없이, 그리고 그 누구의 간섭과 참견 없이 커피, 운동, 책, 글쓰기 그리고 음악으로 하루를 가득 채우는 것이 내 사치일 것이다. 산미와 향미가 뚜렷한 커피를 내려 마시고, 슬리퍼를 찍찍끌고 헬스장에 가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비오듯 땀을 흘려내고, 읽고 싶은 대로 마음껏 읽고, 쓰고 싶은 대로 마음껏 휘갈겨 쓰다가 잠에 들면 그날 하루는 매우 사치스러웠다 말할 수 있다.사회적으론 말없이..
도둑맞은 건망고 추웠던 어느 날 약속이 있어 샤브샤브집에서 지인을 만났다. 매서운 추위를 녹여줄 국물을 오손도손 한국자씩 각자의 그릇에 덜어주며 만나지 못했던 그간의 근황을 나누기 시작했다. 한 명은 코타키나발루에, 한 명은 방콕에 다녀와 각자 각국에서 무엇을 하고 무엇을 보았는지에 대해 신나게 떠들던 와중, 지인은 나에게 갑자기 건망고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그의 건망고 썰을 축약하면 이렇다. 내가 너를 주려고 방콕에서 건망고를 사서 집에 뒀다 → 친구들이 집에 놀러왔다 → 친구들이 너의 건망고를 먹겠다고 선언했다 → 나는 안된다고 말렸다 → 친구들은 건망고는 편의점에서도 판다 그러니 그걸로 대체해라 우리는 이걸 꼭 먹어야겠다고 말했다 → 건망고는 그렇게 그들의 입속으로 들어갔다.애석하게도 그렇게 나의 건망고는 역사..
아무 이유 없이 삐딱하고 싶은 날, 기울어진 피사의 사탑을 떠올리며. 그런 날이 있다. 내 심보가 이리 놀부같이 고약했던가? 싶은 자괴감이 들만큼 아무 이유 없이 괜히 삐딱하고 싶은 날. 예를 들면 이러하다.① 광고에 빈정대기"정답은 없어 인생이란 필드에선, 어떤 무기를 꺼내야 할지 아는 여자 (모 골프채 광고 中)" 어느 심술 궂은 날,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이 광고를 쳐다보고 혼자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거야 나도 알지, 내가 몇 미터 남았을 때 몇 번 아이언이라는 무기를 꺼내 잡고 쳐야 하는지는. 근데 적당한 클럽을 꺼내도 정타에 맞추기가 얼마나 어려운 줄 아니? 100m를 목표로 야심차게 휘둘렀는데 뒷땅쳐서 50m 나가면 얼마나 짜증나는 지 아냐고?' 카피라이터는 그저 본인의 업무에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어느 날 전송된 어떤 제품의 광고 문자. ‘문자를 받으신..
글쓰기를 위해 시작한 필사, 이젠 살기위한 필사가 되고 있다. 학생 시절엔 늘 노트를 들고다니며 끄적끄적 외워야 할 것들을 직접 써내려가며 공부를 했다. 하지만 직장인이 되고나서부턴 직접 노트에 쓰기보단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다거나 하지 않는 이상은 펜을 잡는 일이 매우 드물어 졌다. 그러던 내가 최근 필사를 시작했다. 필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글쓰기를 시작하고 나서 나의 어휘력과 문장력이 많이 부족하다 절실히 느끼게 된 것이 시작점이다. 그리고 이를 향상시키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던 찰나 라는 책을 발견하게 됐다. 이 책의 유선경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휘력과 문해력, 문장력은 독서와 필사, 글쓰기를 함께 실행할 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그나마 짧은 기간에 가장 효과적으로 성장합니다. 특히 필사는 가..
다소 격한 나의 정신수양 방식, 달리기에 대하여 어렸을 적부터 놀이터에 나가 뛰어놀기를 매우 좋아했다. 나의 엄마 이여사는 늘 저녁때면 밥 먹으러 들어오라 창문 밖으로 나를 불렀지만, 나는 밥은 커녕 열심히 뛰노는데 정신이 팔려있어 이여사의 말을 한번에 들은 경우가 손에 꼽았고, 결국 매번 이여사는 나를 직접 검거하러 문밖을 나와야 했다. 운동을 좋아하고 뛰어나가 놀길 좋아하는 기질은 나의 아빠로부터 유전된 것으로 추측된다. 이씨 일가와는 달리 한씨 일가에서는 체육 교사 등 체육 관련 직종의 인물을 다수 배출하였고, 나의 아빠 역시 운동신경이 좋으시다. 덕분에 나는 다른 상은 못 받아도 체육 교과 우수상은 중, 고등학교 6년을 매 해, 매 학기마다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성인이 되어서는 헬스, 골프, 주짓수, 테니스, 필라테스, EMS 운동, 자전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