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치스럽게 살기로 했다. 내가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면 그게 사치스러운 것이다. 나에게 그 사치는 좋아하는 작가, 감독의 작품을 돈과 상관없이 하는 것이다.”
배우 윤여정 선생님이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한 말이다.
"나에게 사치란?"
그렇다면 나에게 사치스러운 삶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시간의 제약 없이, 그리고 그 누구의 간섭과 참견 없이 커피, 운동, 책, 글쓰기 그리고 음악으로 하루를 가득 채우는 것이 내 사치일 것이다. 산미와 향미가 뚜렷한 커피를 내려 마시고, 슬리퍼를 찍찍끌고 헬스장에 가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비오듯 땀을 흘려내고, 읽고 싶은 대로 마음껏 읽고, 쓰고 싶은 대로 마음껏 휘갈겨 쓰다가 잠에 들면 그날 하루는 매우 사치스러웠다 말할 수 있다.
사회적으론 말없이 맡은 일 완수하고 자기개발 열심히 하는 파워J형 인간으로 비춰질테지만 사실 난 애초에 돈 버는 일엔 관심 없는 한량 체질로 태어났다. 사회적으로 보여지는 모습들은 모두 살기위해 후천적으로 개발되어 성인이 된 내 삶에 일상화 됐을 뿐이다.
그 외에 맛있는 것 먹기, 친한 친구들과 한번씩 만나 담소 나누기, 마음에 드는 물건 사기, 여행가기, 전시회 구경하기, 마사지 받기 같은 것들은 하면 좋고 안 하면 아쉬운 것들이다.
반면 돈을 잔뜩 줘도 하기 싫은 것은 목적 없는 통화, 막히는 길 운전하기, 내 참석의 이유가 불분명한 미팅자리 들어가기, 비 오는 날 나돌아다니기, 인파 많은 곳 가기, 떡순튀 먹기 등이다. 내 인생에 가급적 없었으면 하는 일들이다.
"사치의 향연, 설날"
이번 설 연휴는 타고난 내 한량의 자질이 힘껏 발휘됐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갓 내린 커피를 내리고선 조용히 책을 읽다가,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소화가 될 동안 다시 책을 읽고, 소화가 좀 되었다 싶으면 헬스장에 가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마음껏 뛰어 주다가, 집에 돌아와 선 다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책을 보다가, 출출해지면 간식 혹은 밥을 먹고, 실컷 읽었으니 이젠 한번 써보자는 마음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다 졸려움이 찾아오면 바로 불을 끄고 잤다. 사이사이 하면 좋고 안 하면 아쉬운 일도 하며, 내 인생에 되도록 발을 들이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은 모두 제거시킨 나의 설날은 이정도면 일론 머스크, 비욘세 부럽지 않은 초호화 사치의 향연 아니었던가.
아무도 모르겠지만 사실 사치를 누리기 위해서는 야심찬 사전 준비가 동반된다. 이 준비란 불필요한 무언가를 없애고 시간을 평평하게 만드는 작업이다. 사치품목 이외 요인은 사전에 다 해치워 제거한다는 뜻이다. 발에 걸리는 돌맹이들은 호미로 하나씩 파내고 펜스 같은 장막들을 걷어내어 바닥은 고르게, 경계는 허물어 둬야 한다. 그래야만 걸려 넘어지거나 가로막히는 것 없이 기체 분자처럼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다. 주말 및 공휴일 뿐만 아니라 내 평일의 시간 역시 최대한 단순하고 평평하게 만들고자 했다. 불필요한 군집심리에의 동요, 잉여 인간 등의 돌덩이들은 내 시간의 길에서 모두 걷어냈다. 그래야 단 30분이라도 더 사치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의 사치 포기"
하지만 늘상 내가 원하는 대로 사치만 부리고 살 수 없는 게 인생이다. 또한 생각치 못한 소행성 충돌 사건으로 하늘에서 암석이 뚝 떨어져 기껏 하나하나 조각돌을 골라내 만들어낸 평평한 시간의 바닥에 거대한 장애물을 놓기도 한다. 이번 명절 역시 사전에 평평한 시간을 준비해 두고 대체로 사치스럽게 보냈으나 예기치 못한 운석의 파편들이 여기저기서 떨어졌으니 이는 바로 집안일이다. 물론 남편과 자식 없는 미혼 여성의 삶에 가사일이 뭐 그리 대수냐며 수많은 기혼자들이 비난하겠지만 나는 나의 엄마 이여사를 보조하여 대구전을 부치고 잡채를 만들었으며 요리에 수반되는 각종 집기를 설거지했다. 또한 연휴 중 하루는 그녀의 수행 비서로 임명되어 온종일 그녀의 기사 노릇을 하고, 그녀의 수다 메이트가 되어주며 장을 보고 짐꾼으로 활약했다. 욕심껏 막무가내로 사치를 부릴 수도 있었으나 가족을 위해 나의 자기 중심적 사치 생활을 일부 포기했다.
"사치와 양보 밸런스 맞추기"
내 것을 내어놓고 희생하고 헌신할 줄 알아야 가정은 행복하게 굴러간다 (글로) 배웠다. 가정 행복의 가장 큰 장애물은 지독한 자기 중심성이라고도 했다. 우리 부모님을 보면 분명 당신들의 자식을 위해 서로 많은 것들을 양보하고 희생했다. 부모가 평생을 나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었는데, 이 정도의 사치 포기는 사실 그들의 희생에 비하면 밥알 한 톨 만치도 되지 않는다.
나는 앞으로도 사치스럽게 살 예정이다. 하지만 가족의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한 글로 배운 양보와 헌신의 정신을 실천하는 지행합일(知行合一)도 추구하겠다. 사치를 부릴 수 있는 것도 모두 부모의 덕택이니, 앞으로는 내가 해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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