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올 3월은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었는데 그 이유는 3주를 강제로 해외로 뺑뺑이 돌려졌기 때문이다. 나가서 일을 처리하고 오라면 처리하고 와야 하는 삶, 그것이 바로 돈을 받고 일하는 자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출장이든 잡일이든 내게 내려지는 명령들과 일들은 내 월급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어디선가 그런 글을 봤다. 회사에서 받는 것 보다 10%를 더 되돌려 준다는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라고. 하지만 체력이 곧 다정함이라고, 신체와 정신이 피곤하니 단 10% 조차의 다정함도 갖추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가족과 붙어 있지 못해도, 내 일상 패턴이 모두 어그러져도, 맞지 않는 시차에 눈 부릅뜨고 일을 해도, 그래도 간간히 줍는 소소한 기쁜 순간들이 있었다.
가령 우연치 않게 때맞춰 보게 된 화등 축제, 화등 축제 길거리에서 산 조그마한 화등, 오전 미팅 전 짬을 내어 방문한 스페셜티 카페, 바리스타와 대화는 주고 받을 수 없어도 맛으로 기쁨을 주고 받을 수 있던 시간, 난생 처음 마셔보는 미얀마 커피, 드디어 나도 갖게 된 라부부, 늦은 오후 일정을 마치고 걷던 길거리의 야경, 내가 좋아하는 배구 선수를 생각나게 한 배구 조각상, 장거리 이동중 휴게소에서 마실 수 있었던 스타벅스 커피.
아마도 위에서 대부분은 한국에서, 내 일상 생활에서는 그리 크게 감흥있는 것들은 아닐테다. 특히 스타벅스는 한국에서 잘 가지도 않는 곳이지만, 내가 머무르는 장소가 인도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스타벅스가 있다는 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3월의 첫 번째 중국 출장에서 본 화등 축제의 경우는 현지 업체 덕에 정말 우연히 얻어걸린 것이었는데, 업체가 다른 지역에 우리 호텔을 예약해 놓았다면, 업체가 다른 지역에 저녁 만찬 장소를 예약해 놨다면 아마도 평생을 모르고 지나쳤을 축제다. 하필이면 그 호텔이었던 것, 하필이면 그 식당이었던, 이 모든 우연이 모여 내게 축제 경험이 생겨났다. 나는 사무실에 그때 사가지고 돌아온 화등을 두었는데, 그 화등을 볼 때 마다 그 때의 밤 공기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그리고는 남몰래 웃음이 지어진다.


3월의 두 번째 중국 출장에서는 중국 출장 최초로 스페셜티 커피 구매에 성공했다. 제대로 말도 할 줄 모르면서 당차게 조그만 개인 카페를 들어갔는데, 주문 부터가 난제였다. 중국인 사장님과 ‘이거?’ ‘아니!’ ‘저거?’ ‘아 몰라 그냥 그거 줘요’를 반복하며 겨우 주문에 성공, 주문에 성공하여 마시게 된 커피는 르완다다. 한국에서도 르완다 원두를 종종 구매해 마시곤 한다. 하지만 어쩐지 타지에서 우연히 들르게 된 카페에서 우여곡절 끝에 마신 덕분인지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다.



3월의 두 번째 중국 출장에서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는 배구 조각상을 봤다. 호텔이 올림픽 경기장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배구 조각상을 보자마자 내가 좋아하는 배구 선수를 떠올렸다. ‘이번 시즌에 그녀는 정말 열심히 해주었는데 봄 배구에 올라가지 못해서 아쉽네’ ‘홈 경기에 가서 유니폼도 사고 직관도 해야 했는데, 사인도 받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다음 시즌에도 그녀가 한국에서 경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시즌 끝내고 편히 잘 놀고 먹고 지내려나?’ 팬심은 해외에서도 지속된다. 호텔로 돌아와 거진 100번은 돌려 본 것 같은 그녀의 활약상을 유튜브 쇼츠로 관람한다. 엄마 미소가 지어진다. 짝사랑은 이상이 현실화 되지 않는다. 어쩌면 현실화 되지 않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그저 저 멀리서 밝게 빛나는 모습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울 수 있다. 그녀를 바라보는 나의 태도 역시 그렇다. 운동 선수란 자고로 코트위에서 가장 빛이 난다. 코트 위에서 맹폭을 가하는 그녀의 모습은 1000번을 돌려 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3월의 세번째 출장지인 인도는 그저 최소한의 것만 충족되어도 기쁘다. 평소에 자주 방문하지도 않는 스타벅스 조차 기쁘다. 5시간 동안 차를 타고 이동하며 허리와 등짝이 마치 작살날 것 같은 느낌이다. 엉덩이도 아프다. 그나마 휴게소에 정차하고 기지개를 펴고자 하니, 낯선 동양인의 모습을 보는 현지인들의 호기심 어린 혹은 경계의 눈살이 너무 따갑다. 동료들과 서둘러 스타벅스로 들어가 아아를 주문 하고서는 벌컥벌컥 마시며 한숨을 돌린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피폐한 내게 사막의 오아시스가 따로 없었다.

3주동안 비행기를 뻔질나게 타고, 타국에서 쉬지 않고 먼 길을 돌아다녔다. 몸이 천근만근이다. 3주동안 사무실에서 일을 못해 쌓인 일이 한라산 정상급이다. 게다가 출장지에서 일을 더 얻어왔다. 환장할 노릇이다. 하지만 다행히 목숨은 부지했다. 피곤하긴 하나 탈나지는 않았다. 그 와중에 간간히 기쁜 순간들도 있었다. 무한 긍정의 사고회로를 들리며, 나는 이제 4월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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