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란 무엇인가? 한계(限界)라는 단어는 두 개의 한자로 이루어져 있다. 限(한계 한)의 뜻은 막다, 제한하다의 뜻으로 어떤 범위를 정하여 그 이상 넘어가지 못하게 막는다는 의미다. 界(한계 계)는 나뉨, 구분의 뜻으로 두 영역을 나누는 경계선이나 범위를 나타낸다. 즉, 두 단어를 합치면 경계를 제한한다는 뜻으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경계선" 또는 "무언가가 미칠 수 있는 최대 범위의 선"을 의미하겠다.
요즘의 나는 갖가지 종류의 한계선에 도달하고 있다. 체력의 한계, 두뇌의 한계, 인내의 한계, 시간의 한계, 자본의 한계. 우선 체력의 한계는 올해 나의 달리기 목표인 21km 달리기에서 맞닥뜨리고 있다. 현재 격주로 달리기 거리를 1km씩 늘리는 LSD 훈련을 하고 있는데, 현재 16km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원래 대로라면 저번주에 17km를 뛰어야 했지만, 도저히 힘이 들어 16km에서 두 손을 들어버렸다. 두뇌의 한계는 회사에서 매번 마주하고 있다. 현업자도 답이 없다는 사업을 우리 부서에서 심폐소생하라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회사의 중장기계획을 생각해 오라는데, 생각이 도저히 나지 않는다. 두뇌의 한계로 업무의 진척이 나질 않는데, 이 와중에 업무는 끊임없이 밀려들어 인내의 마지노선이 무너진다. 그래서 타인에 짜증을 부쩍 많이 내고 있다.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점심 시간에도 짬을 내어 일을 해도 칼퇴를 하기가 버겁다. 넉넉히 운동할 시간과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을 가지고 싶은데 항상 어느덧 자야 할 시간이다. 6천피 시대인 요즘 돈을 넣기만 하면 주가가 오른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주식을 더 매수하고 싶다. 하지만 이미 가용 자금은 풀 집행 중이다. 돈이 더 이상 없다.
인생의 여러 군데서 한계에 봉착한 요즘, 마음이 어지럽고 뒤숭숭 하다. 내 한계선은 왜 이리도 코앞에 있는가, 한 발짝 내디려니 바로 벽인게 (수감되어 본 적은 없지만) 마치 1인 수용소에 갇힌 거 같네, 하는 생각을 한다.
아이스 커피를 벌컥벌컥 마신다. 초콜릿을 잔뜩 베어먹는다. 무아지경으로 달려본다. 장바구니에만 넣어 두고 결제를 망설이던 러닝화를 사버린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는다. 좋아하는 선수의 득점 영상을 무한 반복한다. 나의 엄마 이여사에 (이 나이에) 찡찡댄다. 에라 모르겠다 냅다 잠을 잔다. 이 행위들은 최근 한계 봉착으로 인한 스트레스에 대처한 나의 자세다. 이것들로도 스트레스 해소가 부족해 어제 부터는 그간 하다말다 하다말다를 무한 반복하고 있는 명상을 다시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여러 한계를 맞이한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인생에서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한계를 느낀다는 것은 결국 내 능력과 지식의 끝에 도달했다는 것인데 그동안 얼마나 놀고 먹기만 했으면, 그동안 얼마나 거저 먹기만 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내가 인식하고 있는 한계가 정말 한계가 맞을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너 아직 더 정해진 스케쥴대로 체력훈련 안해봤잖아, 17km 까지 뛰는 거 아직 한 번 밖에 부딪혀 본적 없잖아, 너가 그 사업 실제로 더 뜯어 봤어? 아직 두 발 벗고 나서보지 않았잖아, 시간이 없다고? 너 사실 누워서 빈둥대는 시간 꽤 많잖아, 여유 자금? 흠, 그건 확실히 없다.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위와 같은 생각을 하니 내가 정의한 한계가 어쩌면, 아주 어쩌면 한계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약간의 희망 사고 회로가 돌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둥바둥 하는데 지친 탓일까, 한계가 한계가 아니라는 사실은 내가 증명해야 하는데 증명해 내기가 귀찮고 가만히 누워 있고 싶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영화나 드라마였다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두 주먹 불끈 쥐고 한계를 멋지게 깨부수는 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질 테지만 나는 리얼월드의 평범한 직장인이다.
커피를 마시겠다. 초콜렛과 탄수화물을 먹겠다. 17km 말고 7km만 뛰겠다. 소설을 읽겠다. 누워서 귀여운 강아지 영상이나 스포츠 중계를 보다가 잠이나 자겠다. 언젠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힘이 나겠지, 하는 대책없는 생각이나 하며 일단 현재의 한계를 수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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