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은 늘 일정이 빡빡해서 숨돌릴 틈이 없다. 이번 중국 출장 역시 당연히 그랬지만 업체 찬스로 짧지만 소소한 관광을 했다. 업체와 저녁 식사를 한 장소는 항저우 서계국가습지공원(西溪国家湿地公园, Xixi Wetland)내의 한 식당. 식사를 마친 후 우리 팀은 공원을 간단히 산책했는데, 때마침 서계화등선(西溪花灯船)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서계화등선은 매년 춘절 및 원소절 시즌에 열리는 서계 등회(西溪灯会)에서 내부 수로를 따라 야간에 보트를 타고 수려한 야경과 밝게 빛나는 유등을 관람하는 체험이라고 한다. 다만 우리는 배는 타지 않고 밝게 빛나는 등불을 공원을 거닐며 눈에 담는 것으로 족하기로 했다.
날씨는 아직 겨울이 꼬리끝을 남기고 있는 터라 살짝 쌀쌀했다. 하지만 봄 향기를 품은 찬공기라 그런지 내겐 겨울 보다는 한껏 싱그럽게 느껴지는 밤 공기였다. 공원 내부는 온갖 등불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어둠속에서 빛을 발하는 등불은 참으로도 진귀하고 오색 찬란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타지에서의 만난 귀하고도 소중한 광경에 연신 사진을 찍고 있는데, 저 멀리서 화등선이 나타난다. 다소 공포가 느껴질 것 같은 검은 물 위를 관람객들은 천천히, 그리고 유유히 지나고 있었다. 검은 물은 가만히 보고 있으면, 곧 순식간에 튀어올라 내 몸을 휩쓸고 끝없는 심연으로 밀어 넣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별들이 길잡이가 되어준 덕분에 그는 돌풍을 잘 피하면서 올라갔다. 별들의 약한 자성이 그를 이끌었다. 그는 너무 오랫동안 빛을 찾아 헤맸기 때문에 아무리 희미한 빛이라 해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여인숙의 불빛 하나만으로도 부자가 된 기분이 들 정도로 빛에 굶주렸기에, 이 신호 주변에서 죽을 때까지 맴돌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제 그는 빛의 세계를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야간비행, 생텍쥐페리, 문학동네, 95p)
검은 물 위에서 꽃부터 풀잎, 학, 사슴, 말, 나비의 빛이 발한다. 검은 물길위에 나 있는 나무 다리를 조심스레 걸어 화등의 빛에 다가가본다. 혹여나 발을 헛디뎌 정말로 검은 물 속으로 끝없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약간의 공포에도 불구하고, 나는 빛에 굶주린 주인공 파비앵 처럼 검은 물을 지나 빛의 세계를 향해 발을 디뎠다.




‘너무나 아름답군’. 파비앵은 생각했다. 그는 보석처럼 빼곡히 들어찬 별들 사이에서 헤매고 있었다. 파비앵과 그의 동료 말고는 아무도 없는, 살아 있는 것이라곤 없는 세계에서. 그들은 보석이 가득한 방에 갇혀 다시는 그 방을 나올 수 없는, 동화 속 도시의 도둑들 같았다. 그들은 얼음처럼 차갑게 반짝이는 보석들 가운데서 엄청난 부자가 되었지만, 죽을 운명을 맞이하여 떠돌고 있었다. (야간비행, 생텍쥐페리, 문학동네, 97p)
검은 물 위로 비친 빨간 꽃의 빛이 더욱 커보인 탓일까, 나는 잠시 가던 길을 멈췄다. 그리고는 빨간 꽃 화등이 비추는 빛을 온 몸으로 맞이했다. 나도 마치 동화 속 주인공 처럼 빛을 모두 다 가진 자 같았다고나 할까. 검은 물은 그저 무섭다고 생각했지만, 화등의 빛을 2배로 밝혀주니 검은 물은 보기보다 그렇게 무서운 녀석은 아닌걸까? 싶은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만큼 빨간 꽃 화등은 너무나도 멋졌다. 빨간 꽃의 빛을 눈에 담고, 나머지 화등의 빛도 모두 담았다. 그리고 검은 물에 빨려들어가지 않고 무사히 길을 빠져나왔다. 참으로 다행히도 빛은 충분히 누리면서도 내 옆엔 동료도 있었고 파비앵 처럼 죽을 운명은 아니었던 것이다.

서계 습지 공원에서 호텔까지 거리가 멀지 않아 동료들과 공원에서부터 호텔로 걸어 갔다. 호텔로 가는 길에서 가는 길을 밝게 안내해 주는 화등 새를 만났다. ‘우리 팀이 새로 만들어 가야 할 해외 사업의 길도 너가 그렇게 밝게 앞길을 비춰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호텔에 들어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다음 날의 일정을 위해 잠에 들었다.

'일상에서의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나의 걱정인형 히메나, 걱정 많은 나를 좀 부탁해! (0) | 2026.04.12 |
|---|---|
| 오천피 시대에 사는 나는 과연 저평가 우량주일까? 답은 ‘아니오’ (0) | 2026.04.05 |
| 혼자서는 완성할 수 없는 연결의 미학 배구, 그리고 인생 (IBK 빅토리아 파이팅!) (0) | 2026.03.21 |
| 하얀 도화지는 어떻게 해야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을까 (0) | 2026.02.14 |
| The Trail’s End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 감상기) (0) | 2026.0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