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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의 단상

The Trail’s End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 감상기)

“뮤지컬 티켓 생겼다, 가자.” “넵” 나의 정신적 지주 박선생님의 호출이 있자마자 나는 묻고 따지지도 않고 대답했다. 일단 대답은 하고 봤는데 그래도 무슨 뮤지컬인지 정도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그녀에 되물었다. “근데 뮤지컬 제목은 뭔가요?” 그리고 그녀는 대답했다. “보니 앤 클라이드”

보니 앤 클라이드? 익숙하다. 분명 어디선가 들어봤다. 그래서 내용을 찾아 읽어보니 내 머릿속 어딘가에서 이들에 대한 기억이 나를 향해 번쩍 손을 들었다. 그리고선 이들의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가 곧이어 떠올랐다.

내용을 알고나니 이젠 출연 배우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나서 내가 가는 날의 캐스팅 스케쥴을 살펴봤다. 보니는 옥주현, 클라이드는 조형균 배우 였다. 대략 7~8년 전 즈음이었던가, 옥댄버를 통해 그녀를 처음 접하게 됐는데 당시 엄청난 성량에 압도당한 기억이 있다. 몇 년 만에 다시 그녀의 공연을 보게 될 생각에 이번에는 과연 어떤 기량을 뽐내 줄지가 매우 기대 됐다.

공연장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이다. 나는 홍익대라고 해서 홍대로 가는 줄 알고 박선생님을 만났다. 하지만 공연 전 저녁을 먹으며 박선생님과 대화를 나누며 깨닫았다. 우리가 가야 할 장소는 홍대가 아니라 대학로 라는 것을. 박선생님과 미리 만나 저녁을 먹지 않았으면, 아마 난 혼자 홍대로 가서 그녀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리고선 박선생님에게 왜 안오시나며 전화했을 것이고, 휴대폰 너머 시원하게 욕을 한방 얻어먹었을 테다. 휴, 하나님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날 욕 바가지로부터 구원하셨다.

공연장은 내 생각보다는 아담한 사이즈 였고, 박선생님과 두런두런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더니 공연의 막이 올랐다. 그리고 곧 옥보니가 나타났다. 옥보니는 옥댄버와는 매우 다른 비주얼과 노래를 들고 나타났다. 물론 그도 그럴 것이 댄버스 부인과 보니는 완전히 다른 개인적 배경 그리고 성격을 가지고 있다.

공연장 입장 전 기념샷
공연 시작 전 무대 한컷

댄버스 부인은 가상의 인물로 소설(원작 레베카) 속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죽은 전 주인 레베카에게 집착하는 매우 미스터리하며 고독하고 어두운 맨덜리 저택의 총괄 집사다. 반면 보니는 실존 인물이다. 실제 보니 파커는 16세에 고등학교 중퇴 후 결혼했지만, 남편은 가정폭력을 일삼고 외도를 하다가 감옥에 갔다. 보니는 법적으로 이혼하지 못한 채 웨이트리스로 일하며 지루하고 가난한 삶을 살고 있었다. 불행한 현실로부터의 탈출을 갈망하며 배우나 가수가 되는 꿈을 꾸고 있던 그녀는 클라이드를 만나고 삶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보니 파커의 실제 삶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면, 뮤지컬 속 보니는 개인적인 결핍과 강렬한 사랑을 동시에 보여줘야 하는 캐릭터인 것 같다. 무대 위에서는 내가 봤던 댄버스 부인의 자태는 온데 간데없었다. 그저 보니만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옥주현은 잘한다. 근데 옥댄버가 내게 너무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탓일까, 보니를 보고 있으면서도 뜬금없이 ‘레베카, 나의 레베카!!!!’가 듣고 싶어 졌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유튜브로 옥댄버를 소환했다. 역시, 레베카가 무서워서 집에 못오는 게 맞는 것 같다.

공연을 다 보고서는 보니의 심리가 궁금해 졌다. 과연 보니는 클라이드를 정말로 사랑한걸까? 그저 현실 도피라는 자극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마치 영화, 소설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취한 것은 아니었을까?

살면서 이성과의 연애를 하다보면 사랑을 하는 자신에게 취하는 나르시시즘을 마주하게 된다. 상대방보다는 로맨틱한 사랑을 하는 내 모습 자체에 도취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비련의 여주인공"이나 "헌신적인 연인"이라는 역할 놀이에 빠지게 된다. 결국 이는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은 그저 나의 사랑 연기를 위한 소품일 뿐이다.

보니 역시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위험한 사랑에 몸 던지는 비극적이고 낭만적인 자신의 이미지를 사랑했던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래서 내가 안되나 싶다. 자신의 남은 인생을 다 내던질 만큼 영혼의 사랑이었을 수도 있는데, 나는 이를 보고 ‘그게 진정 사랑이냐?’ 부터 의심하고 있다니. 아, 나란 인간… 보니의 진실은 모르지만, 아무튼 보니와 클라이드는 운명의 단짝이었던 것은 맞는 것 같다.

내게도 운명의 단짝이 생길지 어쩔지는 잘 모르겠으나, 함께 운명을 같이할 짝이 있다는 것은 분명 하나의 축복이 아닐까 싶다. 내게도 과연 그런 축복이 내려질지는 모르겠다. 그저 운명에 맡겨야 겠다.

- The Trail's End (By Bonnie Parker, 1934) -
[보니 파커가 죽기 몇 주 전 쓴 시 중 마지막 연]
Someday they'll go down together;
언젠가 그들은 함께 쓰러질 것이고,
They'll bury them side by side;
사람들은 그들을 나란히 묻어주겠지.
To few it'll be grief—
소수에게는 슬픔이 되겠지만,
To the law a relief—
법에게는 안도감이 되겠지.
But it's death for Bonnie and Clyde.
하지만 그것이 보니와 클라이드에게는 죽음(끝)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