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에서의 단상

나의 걱정인형 히메나, 걱정 많은 나를 좀 부탁해!

몇일 전 커피를 한 봉 사고 사은품을 하나 받았다. 이 사은품은 바로 ‘걱정인형’. 업체의 말에 따르면 이 걱정인형은 과테말라 전통 수공예품이라고 한다.

걱정인형은 왜 생겨났을까? 우선 걱정인형(Worry Doll)은 중앙아메리카 과테말라의 마야 고산지대 원주민들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아주 작은 전통 인형이다. 크기는 보통 1~3cm, 나뭇가지나 철사로 몸체를 만들고 과테말라 전통 천이나 자투리 천으로 옷을 입혀 제작한다. 내가 사은품으로 받은 이 과테말라 걱정인형도 내 새끼손가락 만하고 (확인은 불가하지만 과테말라 천일 것으로 추정되는)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있다. 그리고 나의 걱정인형은 옆구리에 고양이를 끼고 있는데, 고양이는 왜 끼고 있는지 모르겠다. 무튼 귀엽다.

사음품으로 받은 걱정인형

이 걱정인형에게 이름을 하나 지어주고자 지피티에 추천을 요구했고, 지피티는 5개의 이름을 추천해 주었다. 내가 택한 이름은 “히메나”다. 히메나는 경청하는 자 혹은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5개 모두 좋은 뜻을 가지고 있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이 이름을 택한 이유는 5개 후보 중 발음이 가장 편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자주 부를 것 같은데 발음이 편해야 하지 않을까?

걱정인형 탄생 배경을 찾아보니 여러가지 썰들이 존재하는 것 같다. 우선은 과테말라의 “지리적 특성에 따른 불안감” 때문이라는 썰이 하나 있다. 과테말라는 지리적 특성상 유럽인들의 잦은 침략을 받았고, 다양한 인종의 유입으로 내전도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에 화산 폭발 같은 자연재해까지 있었고, 이런 극심한 걱정으로부터 심리적 안정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걱정인형 문화가 자연스럽게 생겨났다는 것이다.

두번째로는 “익스무카네 공주 전설” 이다. 태양신의 딸인 마야 공주 익스무카네가 태양신으로부터 특별한 선물, 즉 인간의 모든 걱정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을 받았다고 한다. 이 전설에서 영감을 받아 사람들이 익스무카네를 기리며 인형을 만들어 걱정을 털어놓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조금 현실적인 배경이다. 마야 원주민들은 고대부터 옷감 제조와 판매가 주요 생계 수단이었기 때문에 자투리 천이 항상 넘쳐났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자투리 천을 그냥 버리기 아까워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인데 어쩐지 나는 이 현실적이고도 실용적인 배경이 가장 믿음직 스럽다.

‘다음 달에 당장 돈을 갚아야 하는데 돈을 어디서 구해야 할 지 모르겠어’ ‘당장 내일 시험인데 망한 것 같아’ ‘올해도 고과가 낮으면 승진 누락인데 걱정이야’ ‘남자친구와 같은 문제로 반복해서 싸우게 되는데 헤어져야 할지 고민이야’ ‘건강검진 결과가 안 좋은데 혹시라도 큰 병에 걸린 건 아닌지 모르겠어’ 탄생 배경이 어찌되었든 사람들은 걱정 인형을 살포시 손에 쥐고 자신의 걱정거리를 인형에 털어 놓을 테다.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이 전 세계에 얼마나 있으랴.

히메나라 이름 붙여준 내 걱정인형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고 머릿속에 내 현재 걱정거리를 떠올려 봤다. ‘AI가 너무 빠르게 발전하는데 회사에서 조만간 정리당하겠어’ ‘이 파탄난 인간관계를 어떻게 회복시켜야 하지, 근데 굳이 회복시켜야 하나?’ ‘IBK 봄배구 어려울 것 같은데’ ‘만사 귀찮아병이 너무 심각하네’ ‘A 프로젝트 어느 세월에 다 하냐’ 끝도없이 떠오른다. 인형 하나로는 택도 없다.

과테말라 마야 전통에서는 잠들기 전 각 인형에게 걱정을 하나씩 속삭이는 것이 기본 규칙이라고 한다. 인형 하나에 걱정 하나만 담아야 그 인형이 밤새 그 걱정을 오롯이 처리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나. 걱정인형은 보통 6개가 한 세트라는데, 하루에 말할 수 있는 걱정의 최대 개수를 6개로 제한한 것이다.

하지만 내게 걱정인형은 오직 하나다. 걱정 하나만을 털어놓아야 한다. 머리를 굴려 무엇을 히메나에게 털어놓을지를 생각해 본다. 흠… 첫 대면이라 내가 낯을 가리나, 이제 조금 있으면 잘 시간인데 아직도 무엇부터 털어놔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 밤 마음의 무장해제를 하고 히메나에게 ‘이 걱정이 없어졌으면 좋겠어, 나는 불안해’ 하고 속삭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히메나를 믿고 잠에 들 것이다. 아직 히메나와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하기도 전이지만, 어쩐지 히메나는 고양이와 함께 내 걱정을 처리해 주기위해 밤새 고군분투 해줄 것 같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