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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의 단상

침대에 누워 나는 게으른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기

나의 오랜 인생메이트 박 선생님과 브런치 약속이 있었다. 약속 시간과 장소는 일요일 오전 10시 30분 서래마을. 오전 10시 30분에 밖에서 누군가를 만나 무언가를 먹고 있다는 것은 내게 굉장히 일반적이지 않은 행위다. 주말의 오전 10시 30분이라면 집에서 사부작 대고 있는 것이 내겐 가장 보통이고 일반적인 행위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박 선생님이 오전에 나오라면 거부하지 않는다. 그 이유라고 하면 그녀의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것을 지난 20여년 동안을 경험했기 때문일 테다. 오전에 나가는 걸 정말이지 안 좋아하지만 그녀의 말을 순순히 듣는 것이 내겐 모두가 이득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말은 따르는 편이 매우 합리적이다.

박 선생님과의 약속 장소는 서래마을의 브런치 카페 파르노. 식당을 갈 때는 무조건 예약을 하는 편이지만 이 날은 예약을 따로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약속 시간이 오전 ‘일찍’ 이었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의 공식은 주말 오전 10시30분 = 이른 시간 = 집에 있는 시간 = 밖에는 아무도 없는 시간이다. 하지만 이 공식은 가게에 문을 여는 순간 처참히 깨지게 됐다. 가게 안이 만석이다. 주말 오전 10시 30분은 이른 시간도 아니고 집에 있는 시간도 아니었다. 고로 밖에 아무도 없는 시간도 아니었다.

파르노에서 그녀와 함께한 브런치
메뉴 이름은 까먹었는데, 이게 정말 맛있었다.

혼란스럽다. 모든 등호가 깨졌다. 이게 무슨 일일까. 이 많은 사람들은 왜 이 시간에 다들 여기에 있는 것일까. 왜 집에 있지 않는 걸까. 박 선생님에게 나는 이 광경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말 오전에 늘상 돌아다니는 박 선생님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야, 브런치집은 원래 이 시간에 이래’

오만했다. 내게 당연한 것이 곳 남들에게도 당연한 것은 아니었다. 내 깐에는 꽤나 임팩트가 강한 사건이어서 부지런함과 게으름에 대해서 오만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최근에 있었던 나의 게으름 목록을 떠올렸다.

  1. 피곤하고 귀찮아서 약속 한 주 미룸
  2. 운동가기 귀찮아서 이틀 미룸
  3. 머리쓰기 귀찮아서 컴퓨터 꺼버림
  4. 통화하기 귀찮아서 전화 안받거나 걸지 않음
  5. 미용실 가기 귀찮아서 예약 두 번 변경함
  6. 침대 위 옷 치우기 귀찮아서 그대로 깔고 잠
  7. 공부하기 귀찮아서 내일로 미룸. 그 내일이 또 다시 내일이 됨

많다. 그 중에서도 특히 자주 반복되는 행위는 1번, 4번, 7번 이다. 귀찮음이라는 것은 몸이나 마음의 기력이 떨어졌을 때 뇌가 ‘너 에너지 아껴라’ 하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던데, 그렇고 하기엔 1, 4, 7번은 지나치게 자주 반복된다. 그럼 도대체 이 특정한 항목에서 특히 날 더 게으르게 하는 진정한 요인은 뭘까.

물론 4번은 게으름이라기 보단 회피다. 왜냐하면 나는 전화 통화를 무척이나 싫어하기 때문이다. 태초에 전화기를 발명한 이를 만날 수 있다면 멱살을 잡고 따질 것이다. 정말이지 전화기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1번과 7번은 무엇이 문제일까. 생각해 보면 애매하거나, 혹은 중요성을 잘 못 느끼거나가 아닐까 한다. 약속 당일은 늘 마음속에 ‘이 사람을 지금 굳이 만나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든다. 공부를 해야하는 시점에는 ‘하루종일 회사에 시달려서 피곤해 죽겠는데 내가 누워 있지도 못하고 꼭 이 공부를 해야하나?’ 생각한다. 결국 이 생각들은 나를 이기고, 나를 침대에 곱게 눕힌다.

그렇게 침대에 혼자 누워서 약간의 자책을 한다. ‘아, 괜히 약속 미뤘나’ ‘아, 나 너무 의지 박약이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타고나길 사람 만나기를 크게 좋아하지 않고 낯을 가린다. 그러니 당연히 애매하고 낯선 사람은 만남 자체가 불편하고 내키지 않는다. 그럼 내 성격을 고칠 수 있을까? 그런데 성격은 또 왜 고쳐야 하는가? 방구석에서 오만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내일은 소개팅이 있다. 사실 지금도 혼자 속으로 상대가 갑자기 연락 두절이 되었으면, 하고 생각하고 있다. 귀찮음의 영역을 넘어서 애매하고, 낯설고, 그다지 중요하다 생각하지 않는 것일 테다. 그래서 나는 나를 게으르다고 정의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역량 대비 욕심껏 이것저것 많이 하고 잘하고 싶어 하는 애일뿐. 모든 걸 척척 잘해내고 모든 걸 완벽히 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누워서 배구 경기나 보며 오늘 저녁을 보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