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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의 단상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한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모든 정규 교육을 한국에서 받은 토종 한국인으로,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언어는 한국어 뿐이다. 영어와 중국어는 교육 과정 속 후천적 학습을 통해 일부 습득하였으나 살면서 사용 빈도 수가 그리 많지 않았던 탓에 자재 자유로 구사하긴 무리다.

100% 국내파인 탓에 내 인생에 해외 사업이라는 일은 전혀 내 팔자가 아닐 줄 알았다. 하지만 인생은 그리 호락호락 하게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는 법. 전혀 예기치 못한 급류를 만난 나는 현재 회사에서 해외 사업 개척의 최전선으로 쓸려와 고군분투하고 있다.

덕분에 하늘을 날아 바다를 건너는 일이 많다. 여권이 너덜너덜해 지는 것은 덤이며, 아직 만료기간이 6년은 족히 더 남았는데 스탬프 찍을 공간이 부족해 조만간 신규 발급이 필요할 것 같다. 현재 내 여권에 가장 많은 스탬프를 찍어주는 국가는 중국이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학교 다닐 적 ‘중국은 나와 상관 없는 곳이야’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중국어 공부에 손을 놔버린 과거의 나를 멱살 잡는 일이다.

중국에 갈 때면 아주 어릴 적부터 중국에서 모든 학창 시절을 보낸 동료를 늘 대동한다. 모든 말은 그의 입을 통해 통역된다. 나는 그의 입만을 쳐다보고 있다. 애석하다. 나도 중국인 처럼 자유자재로 내가 원하는 바를 표현하고 싶다. 한국어와 중국어 구사가 모두 자유로운 그가 부럽다.

중국 출장 중, 저녁을 먹고 호텔에 돌아가는 길

영어는 중국어 보다는 형편이 낫지만 그 마저도 사실 그리 자유롭지 못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AI의 발달로 읽고 쓰는 것에는 지장이 없어졌다. 하지만 아직 AI도 해결해 주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 이는 말하기다. 영어권 국가로 출장을 갈적엔 한국어-영어 바이링궐인 내 상사가 내 입이 되어 준다. 나는 그의 입만을 쳐다보고 있다. 또 다시 애석하다. 여기서 나는 또 그에게 부러움을 느낀다.

‘아, 왜 우리 이여사는 나를 유학을 보내지 않았을까’ ‘유학 보내 달라고 드러누울걸’ 뒤늦게 혼자 못난 생각이나 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미 과거의 선택이 현재의 내가 되어 있을 뿐이다. 지지리도 못난 생각들은 이제 집어치우기로 한다.

다양한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부러운 점은 단순히 ‘외국인과 자유롭게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 뿐만은 아니다. 내가 진정으로 부러운 건 세계를 더 높은 해상도로 인식하는 능력을 가지는 것이다. 더 높은 해상도라 함은 아래와 같은 것들이다.

  • 아프리카 반투어인 “Ubuntu”는 타인의 존재를 통해 내가 존재한다는 공동체적 인간관이라는 뜻인데, 한국어로 정확히 매칭할 수 있는 단어는 떠오르지 않는다.
  • 일본어 “侘寂(Wabi Sabi)”는 불완전함과 무상함 속의 아름다움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한국어로 완벽히 일치하는 단어가 없다. 풀어서 서술해야 한다.
  • 포르투갈어 “Saudade”는 부재하는 것에 대한 깊은 그리움과 향수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이 역시 한국어로 적당한 단어는 떠오르지 않는다.

연구자 팀 로마스(Tim Lomas)는 영어에 1:1로 대응할 수 없는 긍정적 감정과 경험에 관한 단어를 전 세계 언어에서 최소 216개 이상 발굴했다. 그는 어떤 감정에 이름이 없다면, 그것은 "주관적 경험의 흐름 속에서 개념화되지 않은 파동"에 불과하다 말한다.

개념을 설명으로 이해하는 것과 단어 하나로 즉각 인식하는 것은 명확히 다르다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단어를 하나 더 알고 있다면 다른 차원의 인지 능력이 하나 더 있다고 믿는다. 비트겐 슈타인이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다.” 라고 말한 것처럼, 내 세계에는 Ubuntu, 侘寂, Saudade란 없다. 내 세계의 한계인 것이다.

또한 어느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는 것은 단순히 단어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언어를 쓰는 공동체의 사고 방식, 가치관, 유머, 맥락을 내면화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생각한다. 나보다 나의 동료, 나의 상사가 더 높은 해상도로 세계를 볼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나는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과거와 내 형편을 탓하는 못난 생각들을 집어치우기로 결심했다. 그럼 마냥 부러워만 하다 이 생을 마감해야 하는가? 어린이도 아닌 내가 제2외국어를 배우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겠지. 그렇지만 중국어든 영어든 문장 하나라도 더 외우고 소통할 수 있다면 720p에 불과한 현재의 내 해상도가 1080p, 2k, 심지어 4k 까지도 가능할 수 있진 않을까? 8k까지는 못 미쳐도 세계가 지금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선명하게 보이지 않을까?

외국어를 잘하고 싶고, 더 높은 해상도로 세계를 보고 싶다면, 그리고 의도치 않게 떠밀려 왔지만 해외 사업에서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면, 해야 할 일은 정해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