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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의 단상

오천피 시대에 사는 나는 과연 저평가 우량주일까? 답은 ‘아니오’

‘오천피? 웃기고 앉았네.’ 현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걸었을 때 내가 속으로 혼자 중얼거린 말이다. 주식을 시작한 이래로 박스피에서만 횡보하는 꼬락서니만 봐왔던 나이기에 오천피란 내가 죽기 전에라도 보면 다행인 숫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사천피를 넘어서자 ‘그래도 설마 오천까지 가겠어?’ 라고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현재는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아는 것처럼 오천피 시대가 진짜로 도래해 버렸다. 그리고 덕분에 FOMO(fear of missing out)가 대한민국을 뒤덮었다.

내가 주식을 거래하기 시작한 건 약 10년 전이다. 하지만 3천피, 4천피, 그리고 마침내 5천피로 오기 전까지 그다지 남는 장사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주식 투자는 근본이라고는 전혀 없는, 즉 무근본의 정점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이러하다. “야, 누가 A종목이 좋다더라.” 그러면 귀가 솔깃해져 충동 구매를 한다. 하지만 주가는 잠시 반짝했다가 속절없이 곤두박질 친다. 왜 좋다고 했는지도, 왜 떨어지는 지도 모른 채 손절하고 돈을 날린다. 그리고서는 손실을 만회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로 어디서 주워들은 테마주에 탑승한다. 잠시 반짝 한다. 좀 더 두면 수익률 200% 300%를 찍고 금방 부자가 될 것 같다. 호기롭게 기다린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주가는 곤두박질 친다. 손절을 거듭한다.

그렇다. 투자에 관한 나만의 관점과 기준은 1도 없는, 투자에 필요한 모든 게 없는 투자였다. 나만의 논리와 원칙이 없는 투자는 매일 홍수처럼 쏟아지는 근거 없는 카더라 통신에 속수무책으로 휘말렸고 가격이 훼손되는 구간에서 굳건히 버틸 수가 없었다. 반짝 돈을 번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투자의 기준이 없이 돈을 벌었기 때문에 그게 내 실력인 줄 알았다. 돌이켜 보면 그저 운이었을 뿐이다.

인생과 투자는 많은 면에서 닮아 있다. 내 관점과 기준이 있어야 한다. 오롯이 내가 선택하고 그 책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블랙스완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인내가 필요하다. 일희일비 하면 안된다. 행운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러나 운은 운일 뿐이다. 자만에 취하는 걸 경계하고 소신있게 내 갈길 가야 한다. 이 모든 것은 돈을 잃어보고 나서야 깨닫게 됐다.

미련하기 그지없는 나란 인간은 몸소 손실을 체험하고서야 무근본 투자법과 결별하고 환골탈태했다. 근거 없는 주변의 종목 추천에는 일절 귀를 닫고 내 나름의 가설과 논리를 바탕으로 직접 회사의 펀더멘탈을 체크하고 매크로 상황을 기반으로 종목을 골랐다. 단타는 일절 지양하고 사골국 우리듯 깊고 오래 담궜다. 원칙을 지키니 장이 시퍼래도 크게 불안하지 않게 됐다. 내가 판단한 가치가 맞다면 여전히 싼 구간이라 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수익률은 오천피에서 팝콘 터지듯 터졌다. 물론 내 판단이 틀렸던 적도 많다. 하지만 그다지 억울할 것도 없고 남 원망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점이 좋았다. 내 오판은 겸허히 인정하고 다른 가설을 세워보면 그만인 것이었다.

회사의 펀더멘탈과 주가를 보면서 고평가 우량주인지, 저평가 우량주인지, 혹은 돌아다니는 시한폭탄인 고평가 저급주(?)인가를 따져보는 일은 생각보다 흥미롭다. 한편 나라는 사람은 어떤 주식형일까를 생각해 보게 됐다. 20대 멋모르던 시절, 아주 용감하게도 스스로 ‘저평가 우량주’라는 확신에 차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서탈의 결과를 알리는 기업에는 인재를 보지 못하는 너희 기업은 분명 망하라리라 저주를 내리고, 나에게 등을 돌리는 전 연인들에게는 너 따위가 나보다 괜찮은 여자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냐는 비아냥을 (속으로) 퍼부었다.

하지만 이래저래 풍파를 겪고 깎여진 30대의 나는 더 이상 나를 ‘저평가 우량주’라 생각하지 않는다. 내 결점과 단점이 이렇게나 명확한데, 스스로를 우량주라고 평하기에는 지나치게 양심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하물며 지금보다 곱절로 허접했던 20대의 나는 그저 저급주(!)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회사는 날 채용할 이유가 없었고, 예전의 연인들도 굳이 나에게 목멜 필요는 없었다. 그들의 선택은 그럴만도 했다.

그렇다면 나는 여태 저급주인가? 내 스스로의 애널리스트로서 나에 대한 리포트를 내놓는다면 우선 ‘not rated’로 표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펀더멘털은 일부 개선됐다. 20대에 비해서 유무형 자산 규모가 늘었다. R&D도 꾸준히 하고 있다. 매출액이 늘며 영업이익, 당기순이익의 개선도 이뤄냈다.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기초 체력도 주기적인 운동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위기 관리를 위한 인내심과 멘탈도 과거 대비 강화됐다. 아직은 ‘not rated’ 지만, 언젠가는 ‘strong buy’라고 표기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지루한 쳇바퀴를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