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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의 단상

지긋지긋한 비, 지긋지긋하도록 미련한 나

따분하고 지긋지긋한 것들이 한번씩 속을 옭아 메어 온다. 최근에 가장 지긋지긋한 것은 비다. 최근 들어 정말 매주 비가 내린다. 장마철도 아닌데 왜 이리 비가 자주 오는지 모르겠다. 비가 오는 것을 반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비가 오는 것을 크게 반기지 않는다.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간단히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옷과 신발이 젖는다. 손에 우산도 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우산은 언젠간 반드시 잃어버린다. 습하다. 머리가 엉망이 된다. 덩달아 화장도 이상해진다. 기분이 어쩐지 가라 앉는다.

가뭄에 단비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기분 좋게 비가 싫은 이유를 모두 고이 접어 두겠지만, 이렇게나 자주 내리는 비는 꽤나 싫고 지긋지긋하다. 하지만 비는 불가항력적인 존재다. 인간인 내가 비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실내에서 비를 노려보는 행위일 뿐이다.

아침에 일어나 내리는 비를 보며 ‘또 너냐?’ 하는 눈빛으로 창밖을 내다봤다. 3일을 연속으로 너를 맞으며 필드를 걸었거늘, 너는 어떻게 오늘마저 나를 찾아왔냐는, 나는 나가서 러닝이라도 하고 싶은데 너는 왜 그것조차 나에게 허락하지 않냐는 질타를 속으로 퍼부었다. 난 이런 너가 너무 지긋지긋 하다고, 마치 권태기가 찾아온 연인처럼 매몰차고 쌀쌀맞게 비를 몰아 세웠다. 하지만 인간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게 전부였다. 방안에서 혼자 궁시렁 거리는 일. 그러나 비는 내가 뭐라고 하건 말건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그래도 비에 굴할 수 없어 나는 우산을 쓰고 기어코 집을 나섰다. 황금 같은 휴일에 내가 좋아하는 마사지라도 받아야 이 지긋지긋함을 피로감과 함께 눌러버릴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내가 늘 지정하여 마사지를 받는 홍선생은 아프시어 병가라고 했다. 홍선생 걱정이 내심 많이 됐다. 그녀는 올 초에도 아파서 병가가 있었는데, 어디가 계속 안 좋은 걸까? 고국을 떠나 타지에서 고생한 흔적인걸까? 그녀의 한국에서의 삶은 어렵고 힘들기만 한걸까? 비로 인한 짜증은 이내 홍선생 걱정으로 뒤덮혔다. 나는 베드에 누워 한참 동안 그녀의 안위를 생각했다. 오랫동안 받아온 홍선생의 마사지 법과는 많이 다른, 이날 처음 받아보는 마사지사의 지압은 더욱 그녀를 생각나게 했다. 홍선생의 지압만큼은 아마 평생 지긋지긋하지 않을텐데, 완쾌한 그녀를 만나 한시 빨리 그녀에게 웃으며 니하오를 외치고 싶었다.

1시간 30분 가량의 마사지를 마치고 샵을 나오니 아직도 비는 지긋지긋하고 꿋꿋하게 내리고 있었다. 대쪽같이 내려대는 비를 보고서는 ‘아직도 너냐?’하는 뚱한 표정을 지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방안 의자에 홀로 앉아서 한편으로는 내 스스로가 지긋지긋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 밤부터 마사지 베드에서도 그리고 의자에 앉은 현재 까지도 지겹도록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한 생각 때문에. 나는 이제 비를 노려보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비에게 너 참 진절머리 난다고 책망할 형편이 아니다. 다 지난 일로 또다시 자학하는 미련한 내 안에 외쳐야 한다. ‘또 너냐?’ ‘넌 어떻게 아직도 그 모양이냐?’ 나란 사람은 매일 같이 오는 비보다도 훨씬 더 지긋지긋하다. 비야, 그래도 너가 나보단 나은 것 같다.

그래도 비가 개면 하늘이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