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가을이다. 속절없는 세월의 야속함이 코끝을 스쳐가 다소 씁쓸하기도 하지만 선선한 날씨, 맑고 청명한 하늘 그리고 울긋불긋한 단풍 이 3박자가 고루 어울리는 날들이 가득하기에 가을을 감히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여름의 끝자락에서 목이 빠지게 가을을 기다린다. 하지만 그렇게나 학수고대 했건만, 올해 가을은 유난히도 날씨가 괴상하다. 분명 아직 나뭇잎들이 초록 빛을 띄고 있는데, 입에서 김이 나온다. 나는 분명 트렌치 코트를 입은 적이 없는데, 갑자기 모직 코트를 입고 있다. 분명 가을이 올 시간인데 가을의 소식은 어디에도 없고 뜬금없이 겨울이 내 앞에 나타났는지가 내겐 매우 기괴하면서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레스토랑에서 5코스 요리를 주문하고 애피타이저를 기다리는데 30분이 지난 후 갑자기 식후 디저트가 등장한 기분이랄까.
순서를 지키지 않고 나타난 겨울은 자기가 나타날 차례가 아니었음을 그래도 양심적으로 깨달았는지, 혹은 사람들의 자자한 원성을 못이긴 것인지 잠시 물러났다. 그리고는 이 시간의 원래 주인공인 가을이 등장했다. 나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냉큼 가을을 온 몸으로 맞이하고자 점심을 후딱 먹고서는 회사 근처의 서울숲으로 향했다.
때아닌 모직 코트를 벗고 비로소 파란 하늘 아래 노랗고 붉게 수놓아진 풍경들을 눈에 담으며 거닐 수 있어 행복하다 생각했다. 일상의 주변에서도 행복과 아름다움은 충분히 찾을 수 있는 것인데, 나는 왜 행복이 항상 저 멀리에 있는 것 같이 느껴질까. 나는 밑 빠진 독일까, 왜 채워도 채워도 공허하게 느껴질까. 행복을 느끼면서도 끝없이 더 많은 행복을 더 갈구하며 허전해 하는 내 모습을 보며 거참 이상한 일이라고 홀로 생각했다.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아름다운 걸 아름답다 인지하고, 아름다움 그 자체로 행복하며 안분지족 할 수 있는 지를. 아직은 그저 계속해서 무언가를 원하고 가지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아마도 안목 부족으로 수많은 행복과 아름다움이 도처에 널렸는데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테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이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일단은 이 행복을 즐겨야 겠다. 내 눈앞에 있는 샛노란 은행나무 잎과 울긋불긋한 단풍나무 모두 조만간 헐벗고 앙상해 지겠지만 그래도 내가 살아있는 한은 1년마다 가을을 만날 수 있다. (있겠지?) 가을은 계속하여 짧아지고 있지만 그래도 짧게나마 행복할 수 있다. 비록 행복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 여전히 행복이 먼 발치에 있는 것 같이 느껴져도, 내 독이 밑 빠져 있다 할지라도 내 생애 맞이할 수 있는 모든 가을의 행복을 꾹꾹 눌러 담겠다. 올해 가을도 역시나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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