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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의 단상

상추와 사촌 형부를 떠나보내며

회사에 텃밭 가꾸기 동호회가 새로이 개설됐다. 나도 창립멤버로 합류하게 됐는데, 그 이유는 병아리 같이 삼삼오오 모여 짹짹거리는 회사의 귀여운 막내 라인들이 동호회 결성을 위해 내게 가입을 권유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반짝이는 눈을 마주하며 차마 거절하기에는 내 마음이 너무 유약했다. 그리고 정신 차려보니 어느덧 동호회 발족식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렇게 작물 재배엔 문외한인 나는 정식 동호회원이 되었다.

우리 동호회는 회사의 옥상 한 켠에 자그마한 텃밭을 꾸렸다. 그리고 투표로 결정한 두 종류의 작물을 심었다. 하나는 루꼴라, 하나는 상추. 루꼴라는 재배해서 샐러드와 샌드위치에 넣어 먹겠다는, 상추는 재배해서 고기와 싸먹겠다는 포부였다. 하지만 심고 얼마 있지 않아 불운하게도 폭염과 폭우가 대한민국을 덮쳤다. 이제 막 물꼬를 트고 자라난 녀석들은 몰아치는 폭염과 폭우를 이기지 못하고 금새 생기를 잃어버렸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던 어느 날, 동호회 임원이 나를 찾아와 무언가를 건네준다. 고개를 빼고 그녀가 손에 든 것을 유심히 바라보니 바로 시들어 버린 상추였다. 동호회 임원진은 그렇게 긴급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음을 내게 알렸다. 그 프로젝트란 ‘시든 아이들 되살리기’다.

작물 문외한인 내가 봐도 이미 이 상추는 가망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동호회 임원진들의 열정을 차마 꺾기에는 여전히 내 마음이 너무 유약했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해 보겠노라 답하고선 말라 비틀어진 상추를 집으로 데려왔다. 나의 엄마 이여사가 내가 들고 온 것을 보고는 ‘얘는 갔다’고 평했다. 그렇다. 내가 봐도 갔다. 하지만 나는 동호회원으로서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심폐소생 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병아리 임원들의 지침대로 흙이 촉촉해질 정도로 상추에게 매일 조금씩 물을 주며 바랐다. 나와 이여사의 예상을 무릅쓰고 기적같이 생기를 되찾기를.

상추 살리기 미션중

얼마 전 나의 사촌 형부가 오랜 암 투병 끝에 작고했다. 향년 49세. 나의 사촌 형부는 암 말기에도 삶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받을 수 있는 치료란 치료는 모조리 받았다. 삶에 대한 의지 하나로 일본에도 건너가 치료를 받았다. 그는 그렇게 6년을 넘도록 암 말기에 맞서 싸운, 최선을 다한 전사였다. 형부를 오랜기간 직접 만나지도, 대화하지도 못했지만 나는 나의 엄마 이여사를 통해 형부의 치료 경과 소식을 들을 때 마다 혼자 조용히 바랐다. 모든 과학적 예상을 무릅쓰고 기적같이 건강을 되찾기를.

내가 살리려 노력했던 상추는 끝내 되살아 나지 못했다. 우리 형부도 각고의 노력을 다했지만 결국 떠났다. 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존재하다 사라지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일테다.

우리 동호회는 텃밭을 재정비하고 새로운 작물 재배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로메인, 적겨자와 방울토마토를 심었다. 새로운 작물들은 더위 속에서도 무럭무럭 자라 났다. 채소들은 순식간에 폭풍 성장했고, 우리 동호회는 수확의 쾌거를 이뤄냈다. 방울토마토는 빨간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제 나름대로 열심히 자라나고 있다.

죽음이란 생명과 공존하며 순환한다. 상추는 떠났지만 로메인과 방울 토마토는 무럭무럭 자란다. 형부는 떠났지만 나의 사촌 조카는 무럭무럭 자란다. 이게 내가 받아들여야 할 사실인 듯하다.

무럭무럭 자란 동호회의 작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