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으로 떠나는 행위는 대체로 두 가지 감정을 수반 한다. 하나는 새로운 환경과 문화에 대한 기대감, 나머지 하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대개 이 두 가지 감정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기본적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그 나라의 이미지에 따라 각각의 가중치가 달라지는데, 이번에 새로 맞이한 미지의 세계는 후자가 압도적으로 큰 나라였다. 그 나라는 바로 ‘인도’
인도를 생각하면 여러가지 복합적인 생각이 떠오른다. 특유의 종교와 문화에서 풍기는 이국적 색채, 커리와 같은 향신료 가득한 다채로운 음식, 명상과 요가에 기반한 정신적 가치, 타지마할과 같은 수려한 건축물이 떠오르는 한편, 가난, 위생과 청결문제, 계급적 요소, 여성에 대한 성폭력 사건 등 부정적인 측면도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인도 출장이 결정되고 나서부터 두려움과 걱정이 나를 떠나지 않았다. 비단 이는 나뿐만이 아니라, 나의 가족, 동료, 친구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연신 ‘어떡하냐’를 내뱉었다. 이는 나를 포함해 인도라는 국가에 대해 한국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어떤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어떡하긴 뭘 어떡하겠나, 회사로부터 돈을 받는 자는 회사가 가라면 가야 한다. 그것이 돈을 받고 일하는 자의 숙명이다.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걱정이 될 뿐이지 가는 게 싫은 것은 아니었다.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더 컸을 뿐이지, 기대감이라는 감정 역시 내 안에 존재 했기에. 그렇게 나는 난생 처음 인도라는 국가의 땅을 밟았다.

제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줍기 위해서 입니다. 무엇을 줍느냐고요? 저를 찌르는 순간들이요. 저를 관통해가는 감정들이요. 심벌즈처럼 제게 와서 쨍하고 부딪히는 장면들을 마주할 때 저는 자주 얼얼해져요. ‘아.’ ‘와.’ 한 음절로밖에는 표현되지 않는 마주침들. 저는 그 순간들을 채집통 안에 고이 보관해 두고 여행이 끝난 뒤에도 오래오래 겪습니다. (줍는순간 中, 안희연 저)
“길거리의 순간들”
한국에서 미리 인도의 렌터카와 기사를 수배해 놓아, 비즈니스 미팅을 하러 갈 적에는 항상 기사가 있는 렌터카를 타고 돌아다녔다. 나는 외국에 가면 항상 길 밖을 유심히 쳐다보고는 한다. 특히나 내 나라와 환경이 다르면 다를수록 길 밖의 세상은 너무나 신기하기만 하다. 인도가 그랬다. 같은 지구상에 있는 국가인데도 내 민족과는 확연히 생김새가 다른 사람들의 모습도, 내 고향과는 너무나도 다른 길 거리의 모습 모두 내겐 흥미로운 광경이었다.
특히나 나는 인도의 길바닥이 재미있다 생각했다. 언젠가 듣기로는 인도의 길거리엔 소가 넘실거린다고 하였다. 사실이었다. 길 거리에는 정말 소가 많았으며, 소들은 다들 나름의 생존 방법을 체득했는지 차 갓길 옆에서 잘들 놀고먹고 쉬고 있었다.
또 하나 재미있던 것은 차선이 무의미 하다는 점이었다. 인도는 이륜차족이 많다. 이륜차족들은 차선을 마음대로 비집고 다닌다. 그에 맞춰 사륜차들 역시 차선을 무시하고 다닌다. 점선을 살짝 넘는 수준이 아니라 차량의 절반은 1차선에, 나머지 절반은 2차선에 걸친 형태다. 인도 공항에 처음 내려 기사의 운전을 보고는 음주운전인가 싶어 화들짝 놀랐지만, 길거리 차량이 너도나도 차선을 종횡무진하는 것을 보고서는 이것이 곧 인도의 운전법이라는 것을 알게됐다. 오히려 차선을 지키고 가는 차주가 미련해 보이는 그 분위기가 어쩐지 씁쓸했다. 클락션도 무의미 하다. 모두가 차선 무경계로 운전을 하다 보니 차도에 있는 모든 운전자가 클락션을 누른다. 동서남북에서 매초마다 울리는 클락션은 그저 길거리의 BGM일 뿐이다.

동영상 서비스가 종료되어 해당 콘텐츠를 재생할 수 없습니다.
“가난의 순간들”
차를 타고 이동하며 노상위에서 천막을 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을 여럿 봤다. 개중에는 아이를 포대로 싸서 들쳐메고 있는 여인도 있었으며, 맨발로 천막 밖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세 가지 기본 요소인 의식주를 갖추기도 어려워 보이는 이들을 보면서 이들은 세상이 원망스럽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내가 묵은 호텔은 세상 세련되고 호화롭다. 호텔은 쾌적하며 깨끗하고, 방 안에서는 따뜻한 물로 마음껏 샤워도 할 수 있다. 조식 뷔페에서는 마음껏 음식을 퍼다 먹을 수 있다. 인도에서는 단 하루만에, 아니 단 몇시간 만으로도 극심한 빈부격차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약간의 오싹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간사하게도 ‘부’쪽이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내게 향하는 수많은 시선의 순간들”
인도 현지 회사를 방문 미팅 하면서, 그리고 잠시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많은 인도 사람들을 마주했다. 대부분의 공통점은 나를 쳐다본 다는 것이다. (도끼병이 아니다 진짜다). 특히나 이 현상은 도심이 아닌 지방에서가 심했는데, 수도인 뉴델리에는 비교적 외국인이 많은지라 외국인인 나에게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뉴델리에서 5~6시간 가량 떨어진 거리에 있는 지방에서 머무를 적에는 뒷통수 마저 따가운 느낌의 시선이 나를 관통한다. 아마도 외국인이 잘 드나들지 않는 이유인 것으로 추측된다. 특히나 젊은 동양인 여자가 뜬금없이 돌아다니는 것이 그들이 보기에는 신기했나 보다. 내게 향하는 수백, 수천 개의 눈동자엔 다양한 함의가 담겨져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차이를 분명히 구분할 수 있었다. 인도의 한 공장 지대에 찾아온 나를 외계인 같이 쳐다보는 눈빛, 외계인이라기 보단 다른 인종에 대한 신기함과 호기심으로 쳐다 보는 눈빛, 그리고 만약 내가 혼자 있었다면 뭔 일을 저질렀겠구나 싶은 눈빛 모두.
“미식의 순간들”
그래도 아주 흡족했던 것을 꼽자면 바로 커리였다. 1주일 넘는 기간 출장 기간 동안 매일 같이 1일 1커리가 기본이었는데 나는 커리를 먹는 순간이 매우 행복했다. 나는 한국, 일본 스타일의 ‘카레’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인도의 ‘커리’는 좋다. 인도 현지의 커리는 한국에 있는 수많은 인도 식당에서 파는 커리보다 훨씬 풍미가 깊다. 이것이 바로 오리지널의 힘인가 보다. 종류도 정말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야채를 좋아하는 덕분에 비건 커리 역시 너무나도 흡족하게 먹을 수 있었다. 삼시세끼를 커리로 먹어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이런 나의 현지 커리 섭취력을 지켜본 출장 동반인들은 혀를 내두르며 나를 인도 공주라 칭해줬다.




난생 처음 간 인도는 내게 쨍하는 순간들을 너무나도 많이 안겨 주었다. 그 쨍하는 순간들은 정상이 비정상으로 되어버린 도로, 한 도시 아래 천당과 지옥의 공존, 내게로 향하는 수 없는 시선들, 그렇지만 눈을 번쩍 뜨게 하는 미식의 순간들 까지 참 다양하게도 존재했다. 아마도 내가 채집한 이 순간들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오래오래 내 채집통에 남을 것 같다.
'일상에서의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밑 빠진 독에 가을의 행복 붓기 (서울숲에서) (0) | 2025.11.29 |
|---|---|
| 지속 가능을 위한 구매라 쓰고 자기 합리화라 읽는다, 보스 울트라 오픈 이어버드 구매 및 사용기 (0) | 2025.11.22 |
| 상추와 사촌 형부를 떠나보내며 (0) | 2025.10.25 |
| 얄궃은 우연과 인연, 그리고 감사 (마지막으로 뒤끝 한 스푼) (0) | 2025.10.11 |
| 직장인의 여름방학, Pursuit of Happiness. (0) | 2025.09.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