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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의 단상

중국 항저우 출장 중 틈새의 서호 관광기 (뇌봉탑의 백사전설과 삼담인월)

항저우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도시다” - 마르코 폴로 -

서호에 있는 마르코 폴로 동상

13세기에 중국 땅을 밟은 이탈리아의 상인 마르코 폴로가 남긴 말이다. 항저우는 중국의 아름다운 도시 10곳 중 하나로 꼽히며, 이 곳의 랜드마크가 바로 서호(西湖, xihu)다. 서호는 유네스코에도 등재된 관광 명소다.

항저우에는 이번에 다녀온 것이 (아마도 맞다면) 세번 째인 것 같다. 하지만 그간 나의 방문은 모두 업무상의 이유였던 탓에 일정 내내 <오전 호텔 로비 집결 → 협력사 관계자 미팅 → 공장 혹은 사이트 견학 → 만찬 및 바이주(백주) 폭음 → 호텔에서 실신> 이 과정의 무한 반복만이 나를 기다렸다. 이 과정 속에서 관광이란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정말 단꿈 같은 것이었다.

그러던 내게도 단꿈이 현실로 이뤄지는 날이 왔는데, 이는 (잠재) 협력사 사장님 덕분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공항에 가기 전 우리 출장팀의 오전 시간이 비는 걸 안 중국인 사장님은 서호에 가서 구경도 하고 배도 타봐야 하지 않겠냐며 직접 벤츠 밴을 이른 아침부터 호텔로 끌고와 우리 팀을 픽업했다.

중국 사람들을 대할 때면 중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이것이 바로 중화사상인가 보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자랑스럽게 그들의 역사와 명소, 음식 등을 언급하고 소개하는 것을 보면 새삼 느낄 수 있다.

호텔에서 차를 타고 약 1시간 정도를 달렸을까. 어느덧 서호에 도착했다. 날씨는 덥지만 매우 해가 쨍쨍하고 맑았는데 햇빛이 강렬하게 비치는 광대한 서호를 난생 처음 보고서는 입이 떡 벌어졌다. 중국은 크다. 모든 게 지나지게 크다. 땅덩이가 크니 호수마저 무지막지하게 크다. 소국에서 평생을 나고 자란 내가 한국에서 본 호수라고는 석촌호수, 광교호수, 일산호수 정도가 다다. 그마저도 사실 난 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륙의 광활한 호수 앞에서는 감히 크다 말하기 어려워 진다. 참고로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서호의 호수 표면 면적은 약 6.4km²이라 하는데 석촌호수가 0.2 km², 일산호수가 0.3 km²이라고 한다. 중국 사람들은 한국에 관광을 오면 모든게 다 미니어쳐 같아 보일 것 같다.

중국인 사장님이 미리 예매한 표 덕분에 우리 일행은 빠르게 배에 탑승했다. 나는 사실 중국인 사장님을 뒤에서 졸래졸래 따라가며 어떤 건물 안으로 향하고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이는 건물이 아닌 배였다. 중국은 올 때마다 내 통수를 짜릿하게 하는 구석이 많아 지루할 새가 없다. 나의 한 친한 지인으로부터 큰 나라는 한번씩 꼭 돌아보고 다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언니의 말이 맞다. 내 나라에서는 보고 들을 수 없는 큰 나라에서의 경험들은 내 협소한 시각과 사고를 항상 깨부순다.

내가 건물이라고 착각한 배
내가 탄 배 보다는 조금 더 작은 배

뇌봉탑(雷峰塔)의 전설 – 백사전(白蛇傳)”

배를 타고 서호를 가르지르다 보면 저 멀리 탑이 하나 보이는데 이는 바로 뇌봉탑이다. 서호와 뇌봉탑에 관해서는 아주 유명한 전설이 하나 있는데, 이는 바로 백사전이다. 백사전의 간략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아미산에서 1,000년을 수행한 흰색 뱀 요괴 백소정과 그녀의 동생이자 하녀인 소청(小青)은 인간 세상에 내려와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으로 변화한다. 항저우 서호의 단교(斷橋)에서 비를 맞던 중, 허선이 우산을 빌려주며 세 사람은 인연을 맺는다. 이후 백소정은 허선을 다시 찾아가 그의 도움을 고마워하며 사랑이 싹트고, 둘은 결혼하게 된다. 한편, 도력이 높은 승려 법해(法海)는 백소정이 요괴임을 간파하고 허선에게 경고한다. 그리고 법해는 단오절에 기운이 약해진 요괴 특성을 노려, 백소정이 웅황주(뱀이 무서워하는 곰쓸개주)를 마시게 하는데, 그 충격에 백소정은 본모습인 흰 뱀으로 돌아가고 허선은 놀라 죽는다. 슬픔에 잠긴 백소정은 죽은 남편을 살리기 위해 선산에 올라가 영지초를 구해 오고, 허선은 기적적으로 살아난다. 이후 법해는 허선을 금산사에 가두고, 백소정과 소청은 남편을 다시 되찾기 위해 법해와 싸우지만 패배하고 백소정은 뇌봉탑에 봉인된다.

뇌봉탑은 1924년에 무너진 적이 있다. 중국의 작가 루쉰은 이 소식을 듣고 ‘뇌봉탑은 무저녀도 싸다’는 취지의 글을 남겼다. 그는 요괴와 인간이 과연 사랑하면 안 되는 것인지, 요괴를 아내로 맞이한 건 허선의 자유 아닌지, 무슨 권리로 다른 이의 삶을 짓밟는지, 중이라면 제 염불이나 하면 될 일이지 흰 뱀과 허선이 부부가 된 것을 왜 상관하는지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요즘도 그러하다. 본인 일이나 잘할 것이지, 남은 놀고 먹고 있느니 어쩌느니 하며 온갖 돼먹지 못한 욕설과 참견을 일삼으며 이것도 모자라 흑백논리로 편을 갈라 내 생각과 다르면 기어코 적으로 규정해버린다. 매우 이상하면서도 피곤한 세상이다. 지금 직장이 아닌 이전 직장에 특히 그런 인물들이 많았다. 혹시나 이전 직장이 무너져 내렸으면 나도 루쉰처럼 무너져도 싸다 통쾌해 하려고 했으나, 회사의 현황을 검색해 보니 아직 건재하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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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탄인위에(삼담인월, 三潭印月)와 달”

하선 후 길을 따라 걷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게 있는 어떤 스팟을 하나 발견했는데, 이는 바로 서호10경 중 하나인 산탄인위에(삼담인월)였다. 산탄인위에는 중국의 1원짜리 지폐에도 실릴만큼 아주 중요하면서도 유명한 것인가 보다.

1원짜리 지폐에 있는 산탄인위에
서호십경 중 산탄인위에 비석

산탄인위에는 '세 개의 물속 탑이 달을 비춘다'는 뜻으로 밤, 특히 달이 밝게 뜨는 가을의 만월 무렵, 석탑 내부에 촛불을 켜면 그 불빛이 석탑의 구멍을 통해 호수에 비치며 여러 개의 달 그림자가 호수 위에 떠오르는 장관을 연출한다고 한다. 비록 나는 대낮에 방문해 그 광경은 보지 못하였으나, 이는 머릿속으로 상상만 해도 실로 낭만적이고 환상적이다.

조그마 해서 잘 보이진 않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물 위에 산탄인위에가 있다
선물로 받은 모형

나는 줄곧 달빛에는 어떤 이름으로 형용할 수 없는 마법과도 같은 힘이 숨어 있다 생각했다. 차가우면서도 순수한, 유수와도 같은 달빛 아래 여러 개의 달이 떠오르는 서호를 바라보고 있는 상상을 하면 아이유의 어떤 노래 가삿말처럼 바람을 세로질러 날아오를 것만 같다.

아마도 내게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천천히 서호10경을 모두 둘러보며 산책도 하고, 호수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즐거움을 만끽했을 터이지만 내게 그럴 여유는 허락되지 않았다. 물론 어쩔 수 없고 억울할 것도 없다. 나는 항저우에 여가를 즐기러 온 것이 아닌, 회사의 지시를 따라 일을 하러 온 것이니까. 그저 이 짧은 1~2시간마저 허락된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하지만 내게 다시 또 서호에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허락된다면, 그때는 꼭 밤에 방문해 보겠다. 서호에 비친 여러 개의 달을 바라보면 어쩌면, 정말로, 달빛의 마법이 찾아와 내 마음 속 깊은 소원이 이뤄질 지도 모르니까.

서호 구경 1
서호 구경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