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오른쪽 눈이 따가웠다. 화장품이 눈 안으로 들어간 것이라 생각해 집에 얼른 돌아가서 메이크업을 지워내야 겠다 생각했다. 그날 밤 나는 일찍 퇴근하여 얼른 화장을 지우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여 모니터를 들여다 보는데 전날 보다 눈이 조금 더 따가웠다. 이상하다 싶었지만 나는 다시 눈화장의 문제라 생각하여 따가움을 참아내고 꾸역꾸역 하루 일과를 마쳤다. 그리고 다시 다음날 아침, 이젠 눈을 제대로 뜨고 모니터를 보기 어려운 지경까지 왔다. 모니터 앞에서 나는 오른쪽 눈을 부여 잡고 이것은 무언가 잘못됐다 생각했다. 그리고 상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회사 근처 안과로 오픈런을 했다.
안과를 방문한 것은 거진 10여년 만인듯 했다. 나의 마지막 안과 방문 기억은 라식 수술 때문이었다. 병원이라는 곳은 머리가 아프든, 목이 아프든, 어디가 아프든 기본 적으로 전혀 유쾌하지 않지만 공포감 까지 주진 않는다. 그러나 내게도 공포감을 주는 병원이 있으니 이는 바로 안과와 치과다. 눈알을 직접 건드리는 날카로운 무언가, 눈에 직접 침투하는 레이져, 정말로 눈앞에 닥치는 것들 앞에서 나는 눈 한번 깜빡이지 못한 채 그저 무방비 하게 눈을 내놓아야 한다. 치과는 말할 것도 없다. 그저 들려오는 소리 부터가 공포다.
내 눈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의사는 내 눈을 얼마나 찌를텐가, 설마 실명하진 않겠지? 별별 생각을 다하며 병원 안 대기 의자에 앉아 있는데 내 이름이 불렸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진료 실로 들어가 기계에 눈을 내밀고 가만히 앉았다. 의사는 심드렁하게 내 눈을 뒤적뒤적 하더니 내 눈이 아픈 까닭은 결석 때문이라 했다. 결석이 눈을 찔러 결막에 깊게 상처가 패인 것이다.
곧바로 결석 제거 작업이 시작됐다. 날카로운 핀셋 같은 것이 눈을 찌르기 시작했다. 눈알이 찔려지는 공포감에 나는 두 주먹을 있는 힘껏 쥐었다. 이 양반 너무 영혼 없어 보이는데, 제대로 결석 제거하고 있는 건 맞나? 나 장님 되는 거 아냐? 1분이 1시간처럼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온갖 잡념이 흐르고, 등 뒤론 땀줄기가 흘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 지도 모르겠다. 심드렁한 의사 양반이 내 눈에서 핀셋을 뗐고, 나는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됐다.
처방전을 냅다 들고서 병원문을 서둘러 박차고 나왔다. 회사로 돌아가는 길이 그렇게 기분 좋을 수 없었다. 질병은 금방 치료받을 수 있는 것이었고, 오진으로 인해 실명하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앞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내가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는다 생각해 봤다. 말 그대로 눈 앞이 컴컴하다. 이렇게 쾌청한 하늘도 볼 수 없을 텐데, 하루종일 모니터를 들여다봐야 하는 내 직업도 내려놔야 할텐데, 우리 엄마아빠 얼굴도 더 이상 볼 수 없을 텐데, 좋아하는 여행도 하지 못할텐데.
“보이지 않아도 보고 싶은 욕망은 있다. 들리지 않아도 듣고 싶은 소망이 있다. 걸을 수 없어도 뛰고 싶은 마음은 들 수 있다. 모든 이들은 행복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中, 조승리 저)
작가 조승리는 후천성 시각 장애인이다. 그녀는 시각장애인 친구 2명과 함께 대만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기획하기 전부터 여행사에서 수 없이 거절당했고, 우여곡절 끝에 떠난 여행지에서도 앞도 보이지 않는데 여행은 무슨 여행이냐는 수많은 조롱이 그녀들을 따라다녔지만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은 여행을 무사히 끝마치고 돌아왔다.
내게 여행은 전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떠나 눈에 담고 싶은 것들을 가득 담고 돌아올 수 있다. 물론 조승리와 그녀의 친구들은 보이지 않는 장애를 극복하고 멋지게 여행을 해냈다. 하지만 나는 자신이 없다. 보이지 않는 다면 집밖에 나갈 용기도 없을 것 같다. 눈에 생긴 작은 해프닝 덕에 마음껏 온 세상을 담아내고 당차게 온 세상을 누빌 수 있는 (교정)시력을 가지고 있는 현재에 감사하게 됐다. 조승리 작가의 말마따나 보이지 않아도 그렇지만 보여도 여전히 보고 싶은 욕망은 가득하다.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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