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사람은 루틴화된 삶을 추종하는 편이다. 우선 주중이든 주말이든 기상시간과 취침시간이 일정하다. 식사 시간도 늘 같으며 아침, 점심, 저녁 별로 먹는 영양제를 구분해 정해진 시간에 정확히 개수를 맞춰 입에 털어 넣는다. 또한 매주 운동을 가는 날과 시간이 정해져 있다. 그리고 요일별로 정해진 운동 부위가 있고, 정해진 운동량을 소화한다. 그 외 물건 정리, 손톱 깎는 시간도 정해져 있다. 20대 초중반 시절 꽤나 오락가락하며 일관성이란 그다지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삶을 살아온 것을 생각하면 천지가 개벽한 것이다. 나란 존재의 산증인인 엄마 아빠 조차 바뀐 내 모습을 기쁘게 생각하면서도 바뀌어도 너무 바뀐 이 현상을 매우 특이하다 생각한다.
물론 직장인이 되면서 어쩔 수 없이 일정하게 살아야 하는 굴레에 갇혀버린, 환경의 영향이 가장 먼저 작용했다. 하지만 타고나길 한량으로 태어난 내가 이를 완전히 몸에 받아들이기 까지는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했다. 나는 늘 나와 싸워야 했고, 나를 수도 없이 인내해야 했다. 그저 숨쉬는 자체 만으로도 탈진할 만큼 엄청난 정신력과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현재는 과거만큼의 에너지 소비까지는 하지 않으면서도, 매우 규칙적인 삶을 살아 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그저 과거 만큼은 아니라는 것이지, 루틴을 지키며 사는 행위는 여전히 내게 고도의 정신력을 요구한다. 역시, 타고난 본성은 쉬이 집 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정신력이 흔들릴 때, 일정한 삶에 진력이 날 때는 간간히 소소한 변주들을 일상에 집어 넣어 본다. 예를 들테면 이러한 것들이다. 항상 직접 원두를 갈아 내려 마시는 커피를 굳이 비싼 카페를 찾아가 돈내고 남 시키기, 수 년째 이용하는 헬스장 회원권이 있으면서도 굳이 다른 헬스장 1일권 구매해 다른 헬스장에서 운동하기, 늘상 유지하는 달리기 페이스에서 갑자기 객기 부리며 러닝머신 부실 기세로 전력질주 하기 등이다.
나름 야심찬 결심이 수반되는 변주들, 그러나 조금 조잡하면서도 구차한 나의 시도들은 사실 대부분이 그저 그런 결과를 가져온다. 나쁘지는 않지만 그냥 흔해 빠진, 내게 그 어떤 신선함도 주지 못하는 그저 그런 변주인 게다. 굳이 돈과 시간을 들여 하지 않았어도 됐을 듯한 매우 그냥 저냥 그저 그런 것들. 심지어 처참히 망하는 경우도 태반이다.
최근 커피 변주로 평소 잘 가지도 않는 동네에 직접 발품을 팔아 두 카페를 찾아갔다. A카페에서 준 변주는 평소 잘 마시지 않는 과일 발효 원두의 커피를 시켜본 것이고, B카페는 그냥 방문 자체가 변주다. 평소 잘 방문하지 않는 스타일의 카페(커피 맛보단 인스타 갬성이 더 강조된 곳)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A카페에서 주문한 커피는 과도한 과일향이 역해 반도 마시지 못하고 버렸으며, B카페에서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억지로 2/3 정도를 마셨다.
그렇다. 이 것들은 그저 그런 것을 넘어 망한 시도들이다. 그렇지만 괜한 시도를 했다고 나를 타박하진 않기로 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A카페의 커피를 마시고는 나의 취향을 다시 한 번 확고히 알게 되었으니, 적어도 다시는 과일 발효 커피에 돈낭비를 하진 않겠지. 돌이켜 보면 특별하고 성공적인 것 보다는 매우 많은 그저 그런 것들과 망한 것들이 훨씬 모여 지금의 내가 됐다. 그저 그런 것들, 망한 것들도 그 나름대로 의미와 추억이 되어 주고 있다. 그래도 망하고 싶진 않다. 망하는 건 짜증나는 일이다.

'일상에서의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타코와 월남쌈 (성수동 엘몰리노에서 타코 오마카세를 먹으며) (0) | 2025.08.23 |
|---|---|
| 그만두어야 할 순간을 놓치면 불바다가 찾아온다 (0) | 2025.08.13 |
| 과감한 잘라내기의 중요성 (갈라진 머리카락을 잘라내며) (0) | 2025.08.06 |
| 마사지를 통한 감사(최선생과 홍선생에게의 감사의 글) (0) | 2025.07.02 |
| 그 어딘가의 중점에 존재하는 너와 나의 이야기 (To. S) (0) | 2025.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