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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의 단상

그만두어야 할 순간을 놓치면 불바다가 찾아온다

평화로운 어느 주말의 낮, 몸이 찌뿌둥하여 운동을 해보고자 집을 나섰다. 평소 같았으면 다니는 헬스장으로 갔겠지만 그 날은 휴무일이었던 지라 회원권이 없는 동네 헬스장의 일일권을 끊었다. 나의 엄마 이여사는 하루만 참으면 내일 헬스장이 여는데 굳이 그렇게 까지 운동을 가야하냐며 나의 운동 열정에 놀라워 한다.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고 돈에 대한 개념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운동하는 데에 돈 쓰는게 아깝다 생각한 적은 그다지 없는 것 같다.

가끔 운동하는 곳을 달리하면 크게 세 가지가 바뀐다. 첫번째는 분위기다. 이번에 일일권을 끊고 간 헬스장은 내가 평소에 다니는 헬스장과는 완전히 다른 인테리어다. 내가 현재 정기적으로 다니고 있는 헬스장은 모조리 화이트 톤이라서 내부가 밝다. 반면 간헐적으로 방문하는 이 헬스장은 모조리 다 블랙톤이다. 두 번째로 달라지는 것은 사람이다. 통성명은 하지 않아 이름은 모르지만 평소 다니는 헬스장의 사람들은 낯이 익다. 하지만 새로운 곳으로 가면 난생 처음 보는 사람들 투성이다. 마지막은 운동화다. 평소 신는 운동화는 헬스장 개인 라커에 보관하고 있기에, 이럴 때는 오랜 기간 신발장안에서 잠만자고 있던 운동화를 집에서 가져간다.

기존에 내가 다니는 헬스장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나의 간헐적 방문 헬스장

이토록 사소하지만 큰 변화는 어쩐지 운동의 시작점에서 날 멈칫멈칫 하게 만든다. 마치 소개팅 자리에서 처음 만난 상대방을 대하는 것 처럼 무언가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다. 하지만 잠시의 어색함을 극복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금새 주변 환경을 잊고 평소처럼 열중하게 된다. 그렇게 얼마만큼 트레드밀에서 뛰었을까. 발바닥의 특정 부분에서 무언가 불편함을 느낀다. 평소 잘 안 신던 신발을 신어선지, 아니면 돌 같은 것이 들어간 건지 잘 모르겠다. 일단 머신을 잠시 멈추고 운동화를 벗고 탈탈 털어줬다. 그리고는 다시 뜀박질을 재개했다. 그런데도 뭔가 자그마한 자갈이 낀 느낌이 지속된다. 하지만 또 다시 멈추기가 싫어 무시하고 뛰기로 한다. 그렇게 10분 15분이 지나니 발바닥을 누가 라이터로 지지는 느낌이 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멈추기가 싫었다. 목표한 운동량을 꼭 달성해야겠으니까. 못하면 패배자 같으니까.

난 발바닥의 고통의 외침을 묵살한 채 결국 그날의 운동 목표를 달성했다. 하지만 뿌듯함 보다는 아픔이 더 컸고 곧장 탈의실로 들어가선 양말을 벗었다. 그리고 발바닥을 유심히 쳐다봤다. 대략 500원 동전 크기 만한 물집이 보인다. 내 30여년 인생 최대의 물집이다.

헬스장을 나와 집으로 가는 길은 지옥길이 따로 없었다. 500미터만 걸으면 우리집인데, 그 500미터길이 모두 불바다 같았달까. 물집이 잡힌 부분이 지면을 밟을 때마다 악 소리가 나는 것을 이를 악물고 쩔뚝이 마냥 걸었다. 집에 오자마자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으니 500미터를 걷는 사이에 그마저도 물집이 터져 진물과 함께 피가 섞여 양말에 묻어 나왔다.

표정과 모습이 어쩐지 내 모습같다

그날 이후로 나는 1주일 간 뛰지 못했다. 걸어서 출근하기도 힘든데 뛰기는 개뿔. 나는 멈췄어야 했다. 하지만 멈추지 못했다. 자갈이 들어간 느낌이 들었을 때, 신발을 탈탈 털고 뛰어도 불편했을 때, 발바닥에 불이 나는 느낌이 들었을 때라도 그만 두었어야 했다. 그만두어야 할 순간을 놓친 이유는 내 미련함과 억지스러움 이었다. 목표 달성의 날은 내일도 있고 내일 모레도 있는 것이거늘. 오늘 못한다고 당장 죽는 것도 아닌 것을.

그만두어야 할 순간을 알고 그만 두었더라면 난 불바다를 맨발로 걷는 듯 한 고통에 휩싸이지도 않았을 테고, 출퇴근길에 택시를 부르지 않았어도 될 것이며, 며칠 뒤 아무런 고통 없이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을 테다. 그만 둔다는 것은 다음을 위한 준비일 뿐인데, 그만둠=포기라는 나의 강박에 나는 다음을 망가트려 버렸다. 그리고 설령 포기하면 뭐가 어떤가 싶었다. 여태까지 살면서 마치 포기 한 번 안해본 사람처럼 군 내가 꽤나 억척스럽고 미련하게 느껴졌다.

물집 트라우마에 걸린 나는 그 문제의 운동화를 내다 버렸다. 그리고 내 무의식 속에 잠재한 그만둠=포기 라는 공식도 내다 버리기로 했다. 물론 그만두기 전엔 심한 내적 갈등이 분명 따라오겠지만 나는 용기를 가지고 그만 둘 작정이다. 나에겐 다음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물집 트라우마 이후 새로 장만한 러닝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