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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의 단상

K열풍에 합류한 한국인의 하루 (선혜원과 북촌 한옥마을 배회하기)

어릴 적 나는 외국의 것만 좋아하는 사대주의 사상이 심각한 아이였다. 무언가 우리나라의 것은 이류, 부족한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내 생활의 대부분은 외제로 가득했다. 가령 음악도 영화도 한국의 것은 잘 듣지도 보지도 않았다. 주로 들고 다니는 물건도 그랬다. 펜은 무조건 일제, MP3는 아이팟, 휴대폰도 아이폰. 그 외 사소한 물건들도 국산보단 외산을 선호하고 신뢰했다. 또한 먹는 것도 한식 보단 양식을 좋아했으며 여행도 국내 여행 보다는 해외 여행을 좋아하고 동경했다. 그리고는 왜 나의 조국은 이러한 강대국의 역사와 웅장한 멋이 없으며, ‘갬성’ 넘치는 물건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가를 항상 한탄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나를 에워싸고 있던 사대주의 사상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강해진 내 조국의 국력, 물건 제조 기술이 좋아진 영향도 분명 있을 것 같다. 가령 지금은 더 이상 아이폰을 쓰지 않고 삼성의 갤럭시를 쓴다. 갤럭시의 편의성을 깨닫고 나니 아이폰에 집착한 10여년의 세월이 꽤나 허망하게 느껴졌다. 화장품도 국산 화장품을 주로 사용한다. 외제 화장품을 아예 쓰지 않는다 말할 순 없지만, 대체적으로 보면 국산 화장품의 경쟁력은 외산에 그리 뒤지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기타 공산품도 가급적이면 국산을 사려고 한다. 음식도 지금은 한식이 먹었을 때 소화하기가 가장 편안하다. (하지만 양심고백을 하자면 음악과 영화는 여전히 서구 문물을 선호한다.)

얼마전 나의 정신적 지주격인 박 선생님과 종로 나들이를 다녀왔는데, 이는 그녀가 내게 선혜원에 가보자 제안했기 때문이다. 선혜원은 고(故) 최종건 SK그룹 창업주가 1968년 매입해 생의 마지막까지 머물렀던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옛 사저로, SK그룹 직원 연수원과 영빈관으로 활용되다가 최근 새 단장 후 일반에 공개됐다. 선혜원은 본래 양옥 저택이었지만, 현대 건축 위에 세 채의 한옥이 어우러지는 구조로 탈바꿈시켰다고 한다.

선혜원 입구

그래서 그런지 처음 겉보기엔 한국적인 것 같지만, 가만히 지켜보면 꽤나 서양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한옥 치고는 나무 톤이 너무 밝아서 약간은 이질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간에 나는 한옥이 좋다. 프랑스에 가서 베르사유를 보면 무척이나 화려하고, 중국에 가서 어마무시한 규모의 궁궐을 보면 엄청 장엄하다. 한옥은 화려함과 장엄함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꽤나 단아하고 자연스러우며 시각적으로 편안하다. 나이가 들수록 절제되어 있고 편안한 것을 좋아하게 된 이유인지, 어릴 적엔 ‘미’로 보이지 않던 것이 ‘미’로 보이기 시작했다.

경흥각 내부로 들어가면 수백 개의 거울 패널이 깔려있다. 선혜원 팜플렛에 따르면 김수자 작가는 “바닥을 거울로 채워 건축, 빛, 그리고 관객을 반사시켜 건축의 구조와 자아의 경계를 허무는 몰입형 공간을 창조”했다 한다. 그러나 사실 나는 몰입하지 못했다. 이날 치마를 입고간 탓에 바닥에 비치는 모양이 영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바닥을 우리나라 전통 목재로 채웠어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딴지를 슬쩍 혼자 마음속으로 걸고는 경흥각을 나왔다.

경흥각
경흥각 맞은편의 동여루
경흥각 내부

경흥각에서 한층을 아래로 내려가면 웬 보따리가 놓여 있다. 나는 이 보따리가 굉장히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불현듯 나의 외조모가 떠올랐다. 그리고 한번 상상해 본다. 서울역에 저런 보따리를 들고 손을 흔들며 나타나는 우리 할머니, 할머니에게 냉큼 달려가 그 보따리를 내 손으로 옮겨 받고 할머니를 와락 포옹하는 나. 하지만 아쉽게도 할머니는 더 이상 만날 수 없고 할머니의 보따리도 들 수 없다.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그 시절보다 키도 크고 힘도 좋아졌는데, 저것보다 훨씬 더 큰 보따리도 들 수 있어졌는데 말이다. 할머니가 보고싶다.

우리 할머니의 보따리가 들고싶다

선혜원 관람을 마치고 내친김에 한국적인 것을 더 즐겨보고자 박 선생님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북촌 한옥마을을 향해 걸었다. 완연한 가을 속 어우러지는 종로의 분위기가 한껏 편하고 좋았다. 한옥마을에 도착하니 한국인보다 되려 외국인이 많았다. 이런 것을 보면 가장 민족적인 것이 세계적이라고 말한 괴테의 말이 맞나 싶다. 웅장하고 화려한 것들에 익숙할 외국인들이 보기에 한옥은 굉장히 단조롭고 소박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내 눈에 한옥은 너무나 멋진 건축물이다. 이른바 ‘국뽕’이 찼나 보다.

요즘은 K-Pop, K-드라마, K-화장품, K-푸드 등등 온갖 것에 K를 가져다 붙이는 세상이다. 예전보다 내 사대주의적 사고방식은 많이 꺾였지만, 사실 이런 기사들이 넘쳐날 때마다 국뽕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남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닌 것 같다. 나는 이미 한옥 국뽕에 차올랐으니까.

몇 년 전부터 경주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생각만 할 뿐 여태 실천을 못하고 있다. 서울 사대문 안이 서울의 역사적, 상징적 중심지라면 경주는 신라 천년의 고도인 만큼 한민족 고대문명의 정수다. 이제야 내 나라의 ‘미’를 조금씩 알아가는 만큼, 경주도 어서 내 눈에 담고 싶다. 그리고 한번 크게 또 다시 국뽕을 맞고 싶다.

한복을 입고 한옥마을을 구경하는 외국인들
고즈넉한 한옥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