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치: 서울 성동구 상원12길 24-1 1층
- 마신커피/구입원두: 에티오피아 구지 내추럴 챔프 시리즈
- 노트: 라벤더, 블루베리, 포도, 복숭아, 복합적인
단골집에서 이미 커피를 한잔 마시고 다시 회사로 들어가는 와중에 길바닥에서 우연히 그라데이션커피의 존재를 알게 됐다.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친다고, 밖에서 기웃기웃 하며 구경하다 원두가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선 훌쩍 들어가 보았다. 카페 내부는 아담했고 초록색의 인테리어가 특징적이었다.
원두를 천천히 구경하고 있으니 사장님께서 친절히 말을 걸어 주셨다. “도와드릴까요?” 평소 말수 없는 나는 커피집 사장님만 만나면 장착되는 대화 부스터를 가동하고는 나의 커피 취향에 대해 썰을 풀기 시작했다. 사장님은 나의 구구절절함을 잠시 듣고 있더니, 현재 원두 라인업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서는 에티오피아 구지 내추럴 챔프 시리즈 원두를 필터로 마시겠노라 대답했다. 사실 커피를 고르는데 꽤나 거창하게 고민한 것은 없었다. 월드 커피 로스팅 챔피언 재키 라이의 셀렉션 원두라고 하니 ‘그래, 어디 챔피언 맛 좀 봐볼까나?’하는 아주 지극히 단순한 사고 회로였을 뿐이다.
주문한 핸드드립을 기다리며 빈 테이블에 앉아 매장을 구경했다. 만약 내가 1인 사무실을 가질 수 있다면 나도 이렇게 꾸며 놓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생각 속엔 사무실 안에는 갖고 싶었던 드비알레 팬텀을 한 대 들여 놓고, 성능 좋은 원두 그라인더와 커피 포트도 갖다 놓고, 마시고 싶은 원두를 잔뜩 배치해 놓고서는 여유롭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 모습이 있다. 지금으로서는 택도 없는 그저 상상속의 나일 뿐이지만 상상은 자유니까.
혼자 몽상과 망상 그 어딘가에 있던 현실 속 나는 사장님께 커피를 받았다. 한 모금 살짝 마시고선 현실도 나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개 이상과 현실은 괴리가 많지만, 커피 맛엔 괴리가 없다. 맛있으면 맛이 있다는 사실, 맛이 없으면 맛이 없는 사실만이 존재한다. 사장님이 필터로 내려준 에티오피아 커피는 내 취향에 들어 맞는 맛이었고 이는 현실이었다.
현실속의 나는 에티오피아 원두도 냉큼 한 봉 계산하고서는 마시던 커피를 들고 카페를 나왔다. 온화한 날씨 속,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길을 걸었다. 이정도면 좋은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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