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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성수동 카모플라쥬(Camouflage) 커피] 에티오피아 물루게타 문타샤, 이게 커피야 레모네이드야?

  • 주소: 서울 성동구 아차산로1길 9
  • 마신커피: 에티오피아 물루게타 문타샤 피베리 워시드
  • 노트: 백도, 자스민, 레모네이드

가끔 나는 벽으로 위장하고 싶을 때가 있다. 벽으로 위장하면 사람들이 나를 찾으러 왔다가도 사람은 없는 휑한 공간에서 벽의 존재만 인식한 후 다시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갈 테니까. 벽으로 위장한 나는 아마도 그 상황을 지켜보며 혼자 속으로 낄낄대며 웃을 테다. 이번에 다녀온 카모플라쥬(Camouflage) 커피도 마치 이름 처럼 건물 속에서 ‘나 카페 아니에요, 여기 카페 없어요’ 하는 모습으로 위장한 모습이다. 그 흔하디 흔한 간판 하나 없으며, 이 곳이 카페라는 그 어떠한 표식조차 없다. 분명 지도를 보고 찾아갔는데 카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혼자 ‘폐업했나?’ 생각하며 두리번 거리다가 마침내 수상쩍게도 야외에 테이블만 덩그러니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다가가 007첩보작전 못지않게 슬며시 내부를 들여다보니 내가 찾던 그 곳이 맞았다.

간판이 없는 카모플라쥬 커피의 외관
외관에 붙어있는 블루리본 스티커

카페는 굉장히 폭이 좁고 길다랗게 생겼다. 굳이 표현하자면 테트리스의 1x4 블록 같이 생겼다. 폭이 좁다보니 다소 답답한 느낌이 드는 가운데, 블루리본 딱지가 5개나 붙어있는 카페 답게 거의 만석이기까지 하니 비좁고 사람많은 걸 싫어하는 나로서는 불편감이 팽팽도는 현상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좁고 길게 생긴 매장 내부

선택할 수 있는 필터 커피 종류에는 세가지 정도가 있었는데 그중 제일 맘에 들었던 메뉴는 에티오피아 물루게타 문타샤 였다. 후딱 계산하고선 벽에 기대어 가만히 커피를 기다렸다. 밀린 주문이 많았는지 커피를 받아들기 까지는 대략 15분 정도가 걸렸다.

생각보다 길어진 기다림과 좁고 긴 공간이 주는 이름모를 길다란 불편감에 심기가 다소 불편해져서는 커피를 받아 들고 냉큼 카페를 나왔다. 그리고는 ‘맛없기만 해봐라’하는 태세로 곧장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마시자마자 곧장 입안은 레모네이드를 머금은 것 같고 후미에는 에티오피아 특유의 꽃향이 우아하게 펼쳐졌다. 카페 안에서 쌓인 불편감은 모두 이 커피 한잔에 씻겨 내려갔다. 마시는 내내 온갖 상큼한 맛들이 입안에서 춤을 췄고 성수동 한복판에서 나도 함께 춤을 추고 싶은 기분이었다.

보통 스페셜티 커피를 마시면 원두의 원산지와 품종 설명, 커피 노트가 적힌 카드를 커피와 함께 받는다. 그리고 이 카드를 읽어 보는 게 내가 싱글 오리진을 마시며 소소하게 찾는 재미다. 하지만 테이크아웃 잔에 덩그러니 붙여진, 지나치게 실용적인 카드 대체 스티커를 보고 있자니 커피집이 커피나 맛있으면 됐지 싶다가도 어쩐지 마음 한구석 드는 아쉬움은 달래기가 어려웠다.

마치 레모네이드 같았던 에티오피아 물루게타 문타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