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치: 서울 성동구 뚝섬로1나길 5 (헤이그라운드점)
- 마신커피: 온두라스 핀카 무뇨즈
- 노트: 레드애플, 토피, 스톤프루트, 블랙티
로우키는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도) 내가 성수동에서 처음 방문한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리 카페다. 성수동에서 일을 시작한지가 어느덧 3년이 되었고 아마도 약 3년 전 입사 초기에 방문했던 듯하다. 그때 당시에도 물론 커피 없이는 온전한 하루를 보내기 힘든 전형적인 직장인의 모습이었지만 지금 만큼 스페셜티 커피에 열을 올리는 수준은 아니었던 지라, 첫 방문 시엔 아마도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않았을까 싶다. 커피가 꽤나 괜찮다고 생각은 했지만 스페셜티 커피 생활 이전 시기라 그때는 로우키의 진가를 잘 몰랐다.
입사 후 약 2년이 흐른 뒤 나는 스페셜티 커피 세계라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됐고, 이때부터 종종 로우키에 직접 가서 원두도 사고 커피도 마시곤 했다. 로우키 원두 구매에 불을 당기는 매력포인트 중 하나는 바로 매달 원두샘플러를 판다는 점이다. 로우키는 매달 5-6 종류의 싱글 오리진을 선보이는데, 이 5-6개의 원두를 20g씩 소분하여 모두 담아주는 것이 바로 원두 샘플러다.
보통의 로스터리에서는 싱글 오리진 원두 1종류에 대개 200g, 500g 단위로 포장해서 파는데 200 g 한 봉을 혼자서 다 먹으려면 대략 5~7일이 걸린다. 하지만 원두샘플러를 사면 5~6가지 종류의 원두를 단 1주일만에 모두 맛볼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다. 나처럼 이것저것 다 손을 대보고픈, 다(多)종류 섭취 욕심이 과한 사람에게 원두샘플러는 정말 최고의 선택지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또 하나의 로우키 원두의 매력 포인트는 바로 포장이다. 원두 포장이 서류 봉투 같은 곳에 담겨 있는데, 마치 엘살바도르의 원두 농장주가 나에게 직접 본인의 수확물을 정성스레 넣어 보내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처음 로우키의 원두 포장을 보고서는 어린 시절 늘 내 주위에 있던 빨간 우체통이 생각났다. 조그마한 손으로 연필을 연필깎이에 열심히 돌려가며 꾹꾹 눌러쓴 편지를 우표와 크리스마스 실을 붙여 빨간 우체통에 살포시 넣기. 그리고선 오매불망 언제 답장이 오나 아파트 우체통을 매일같이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던 시절.
하지만 발신과 수신 사이에 필연 존재하는 기다림의 애틋함은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너는 지금 내 업무 협조 메일을 받고도 왜 반나절 동안 회신이 없냐 닥달하는 삶, 너가 아무리 바빠도 화장실은 가지 않냐며 내 카톡에 3시간째 답장을 안하는 건 납득불가라 시비거는 삶. 1시간의 기다림도 벅차게 된 내 현재에 빨간 우체통의 추억은 아련하고도 씁쓸하게 느껴진다.
빨간 우체통은 뒤로 하고 다시 커피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방문한 이날 나는 온두라스 필터 커피를 마셨는데 온두라스의 산뜻하고도 크리미한 단맛이 잘 어우러 졌던 것 같다. 필터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카페를 구석구석 구경하는 재미도 있어 기다림이 전혀 지루하지 않은 곳이다. 입사 초기에나 지금이나 잊지 않고 종종 로우키에 들르게 되는 건 매장, 원두 포장, 커피 모두가 흥미롭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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