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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으로부터의 사색/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2024)

[코나키나발루 5화] 코타키나발루 시내를 구경하며 세종대왕님께 무한 감사를

코타키나발루 시내를 요모조모 구경하며 무언가 정체가 불분명한 곳이라는 느낌이 자주 일었다. 도대체 어떤 요소 때문에 나는 이런 감정을 느끼는가를 곱씹어 본 결과 이는 ‘글자’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말레이시아는 말레이시아어가 있다. 하지만 고유의 문자가 없다. 그런 탓에 영어 알파벳을 사용하여 발음 그대로 표기하는 음소적 표기방식을 사용한다. 이를테면 ‘안녕하세요’라고 구두로 말은 하지만 이를 문서에는 ‘annyeonghaseyo’ 라고 표기하는 것이다. 또한 영국 식민지배의 영향이 더해져 단어들 상당수가 영어에서 파생된 흔적이 보인다. 가령 말레이시아어로 1월은 Januari 라고 말하고 쓰는데, 본래 영어 철자인 January라 쓰여 있지 않아도 1월을 뜻하는 지를 금방 알 수 있는 식이다.

또한 말레이시아 전체 인구 중 약 20%가 중국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어 간체로 표기된 간판 역시 즐비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국은 코타키나발루를 주도로 삼고 있는 사바(Sabah)주에 관광객을 가장 많이 보내는 나라 중 하나다. 사바 관광청의 2013~2024년까지 국가별 관광객 통계에 따르면 중국인 다음으로 한국인 관광객이 많다. 한국인 관광객의 비중은 21.1%로 사바주에 놀러 온 관광객 100명 중 약 21명이 한국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한국어도 엄청나게 많이 쓰여 있다.

사바 주 방문 외국인 국적 통계표(2013~2024) (출처: 사바 관광청 홈페이지)
시장 안 어느 가게의 현수막에 쓰인 무언가 이상한 한국어
음식점 판넬에 쓰인 한국어 (테판야끼 불쇼)

고유의 글자가 없는 탓인지, 말레이시아인 입장에선 외국어인 글자들이 별다른 거리낌 없이 퍼져 있는 듯하다. 영어를 필두로 중국어와 한글이 온 도처에 널려 있다. 덕분에 말레이시아의 손님인 난 수많은 간판을 보고, 음식점에 들어가 수많은 메뉴판을 봐도 별다른 이질감 없이 거의 모든 글자를 읽어낼 수 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어를 하나도 모르는 내가 어찌하여 말레이시아에서 통역이나 휴대폰의 도움 없이 모든 글자를 이해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꽤나 이질적이다. 한국어를 배우지 않은 프랑스인, 태국인, 영국인은 별도의 표기가 없는 이상 한국에 여행와 한글을 보고 읽어낼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다. 내 나라 고유의 언어와 글자를 사용하는 나에겐 언어와 글자의 불일치가 꽤나 기묘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는 수백년전 까지만 해도 내 선조들의 삶이었다. 나랏말싸미 듕긕에 달았으니까. 세종대왕께서 문짜와로 서르 사맛디하여 사람마다 해여 수비니겨 날로 쑤메 뼌한킈 하고져하시어 새로 스물여덟자를 맹가주신 덕에 나는 내 선조들과는 달리 언어와 글자가 일치하는 복을 누리고 있다.

말은 민족의 정신이요, 글은 민족의 생명입니다.” 영화 <말모이中>

말과 글은 민족의 정신을 담는 그릇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일제 강점기에 한국어를 그리도 무참히 말살하려 했다. 일제의 무자비한 핍박 속에서도 조선어학회가 목숨을 걸고 사전을 만들어 한국어를 지키고자 한 것을 보면 얼마나 말과 글자가 그 민족의 존속과 민족의 정체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다. 고유의 글자가 없는 이 민족은 과연 어떤 요소가 그들의 민족 정신과 역사, 그리고 얼을 묶어 두는지, 그들의 시와 소설은 과연 민족의 감정과 사상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지를.

세종대왕님 덕에 한자로는 쓸 수 없었던 우리 민족의 말을 완벽하게 표기할 수 있게 되어 새로운 차원으로 민족 문화가 발달할 수 있었다 생각한다. 그렇게 감사한 세종대왕님인데, 세종대왕님 동상 앞에서 백성들끼리 허구한 날 투쟁하고 시위만 벌이고 있으니 죄송하기 그지없는 세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