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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으로부터의 사색/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2024)

[코나키나발루 4화] 사피섬과 마누칸섬에서의 변신

“안녕하세요 ㅇㅇㅇ님?” 이른아침 조식을 먹고 호텔로비에 앉아 현지 가이드를 기다리며 휴대폰을 보고 있는데 어디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드니 작고 귀여운 말레아시아 아가씨가 나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외국어가 아닌 모국어가 내 귀로 들어와 무방비 상태로 그녀를 마주한 탓일까. 말레이시아에서 말레이시아인을 만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도 잠시 흠칫했다. 그녀가 몰고온 차에 올라타고서 그녀와 함께 제셀톤 포인트 선착장으로 향했다. 마치 이제 막 옹알종알 말을 시작한 아이를 대하듯 신기하고도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그녀에게 이런저런 말을 걸었다. 한국 드라마를 엄청나게 보며 한국말을 익혔다는 그녀. 나의 잡다한 질문에도 일절 막힘없이 쫑알쫑알 명쾌히 대답하는 걸 보면서 기특하기 까지 했다. 언론에서 “K-푸드”, “K-뷰티” 등 K-어쩌고를 떠들 때마다 호들갑스럽다 속으로 생각하지만, 확실히 10여년 전 보다는 외국에서 한국어가 많이 보이고 들린다는 걸 체감한다.

이날의 여정

이날의 물놀이 코스는 다음과 같았다. 호텔 픽업 → 제셀톤포인트 선착장에서 보트 탑승 → 사피섬 → 마누칸섬 → 호텔 복귀. 가이드 그녀는 우리에게 일정을 간략히 설명해 주곤 제셀톤 포인트에 정박해 있는 한 보트에 우릴 태웠다. 곧장 출발한 보트는 바다 위를 쉴새없이 통통 튀며 약 10~15분 뒤 사피섬에 우릴 내려 주었다.

사피섬에 도착하자마자 섬을 둘러볼 새도 없이 가이드 그녀는 나의 손을 붙들고선 패러세일링을 위해 탑승해야 하는 보트로 데려갔다. 이제 막 보트에서 내려 제대로 육지를 밟아 보기도 전에 나는 그렇게 다시 보트에 태워져 바다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얼마만큼 보트를 타고 다시 바다로 나온 걸까. 정확히 바다의 어느 지점에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직원들이 보트와 연결된 낙하산에 내 몸을 주섬주섬 묶고 서는 인정사정없이 바다를 쾌속질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순식간에 코타키나발루 바다 위에, 그리고 하늘에 두둥실 떠올랐다. 그리고 알록달록 예쁜 캐노피가 하늘을 향해 활짝 펼쳐졌다.

가끔 길을 걷다, 혹은 운전을 하다 하늘을 나는 새들을 쳐다보곤 ‘너네 참 부럽다’고 종종 혼자 중얼거린다. 언제든 자유롭게 날개를 활짝 펼칠 수 있는 삶, 마음 대로 방향을 틀고 고도를 조절할 수 있는 삶, 어떠한 신호등, 전봇대, 경계 없이 마음껏 비행하고 여행할 수 있는 삶. 비록 어딘가에 묶인, 제한된 시간 동안이지만 나는 잠시 새가 될 수 있었다. 지상을 떠오른 자유와 해방감, 거대한 바다 위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감탄, 모든 소음과 혼잡에서 벗어난 평화와 고요함이 나를 찾아왔다.

만약 새들과 길거리 인터뷰가 가능하다면 지나가는 비둘기, 참새, 까마귀를 잠시 붙잡고 묻고 싶다. 너희들도 날 때마다 해방감, 경외감, 고요함을 느끼는지. 비행 중 아래를 내려다보며 지구의 주인이라 칭하면서 날지도 못하는 인간을 비웃고 있진 않는지. 아니면 둥지에 있는 자식 먹일 먹이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느라 그럴 감정을 느낄 새는 없는 건지, 찬바람 맞기 싫지만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나는 건지, 신접 살림 차릴 부동산(둥지) 임장은 많이 했는지 등. 정확한 그들의 심경은 알지 못하지만 아무튼 새들이 부럽다. 원래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이니까.

360도 카메라에 담긴 패러세일링 장면

새 체험을 마친 뒤 마누칸 섬으로 건너가 이번엔 물고기가 된다. 간단한 스노클링 장비를 착용하곤 패러세일링으로 산발이 된 머리를 물 속에 집어넣는다. 아바타2(물의길)의 한 장면 처럼 맑고 투명한 바닷속에 물고기들이 가득한 모습을 한껏 상상했지만, 내 상상과는 달리 물 속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게 아닌데 하며 물 속에 고개를 여전히 처박고서 발장구를 힘껏 치며 자리를 옮겨본다. 이내 조그마한 멸치 같은 몇몇 녀석들이 헤엄치는 것이 보인다. 제법 큰 녀석도 그 옆을 유유히 지나간다. 나는 움직임를 멈추고 일(一)자로 물 위에 둥둥 떠다니며, 고개는 여전히 물 속에 넣어놓고서 물고기를 유심히 지켜본다.

물 속에선 그 어떤 바깥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상공에서 처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심오한 고요 속의 고요다. 세상의 온갖 소음으로부터의 탈피가 늘 목말랐던 나는 그 고요함이 좋아 마치 익사자 처럼 물위에 가만히 머리를 박고 있었다. 그러면서 또 물고기를 부러워한다. 너희들은 사람들이 생각 없이 아무렇게나 내뱉는 소리를 듣지 않아서 좋겠다고, 온갖 꿀발린 거짓된 말을 듣지 않아서 좋겠다고, 교묘하고 폭력적인 선동의 소리를 듣지 않아서 좋겠다고. 물론 물고기들도 제 나름 포식자를 감지하고 회피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며 모종의 소리를 듣느라 피곤할 테지만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 남의 떡은 물 속에서마저 커보이니까.

한참을 물속에서 물고기로 빙의했다가 나는 다시 뭍으로 나와 인간으로 돌아왔다. 새와 물고기가 부러운 건 부러운 채로 놓아둔 채 나는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 다시 땅에 발을 붙이고 나를 둘러싼 온갖 소음과 잡음에 맞서야 한다. 그것이 인간으로 태어난 나의 숙명이다. 그래도 한 번씩은 이렇게 새가 되고 물고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물살을 통통 튀기는 보트를 타고 인간세계인 육지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