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바람 좀 쐬러 가자, 갑갑하다.” 나의 엄마 이여사가 차려준 밥상에서 코를 박고 열심히 먹고 있던 와중 이여사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그간 정신없이 몰아치는 현실에 파묻혀 여사님에 신경쓰지 못한 불효녀는 음식을 우물우물 씹으며 고개를 들고선 그리하자 대답했다. 제주도 여행 일정을 확정하고는 곧바로 맛집 서치에 돌입했다. 무심한 불효녀가 당장 수행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는 이여사에게 미식 선물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평소 이여사가 좋아하는 음식들과 제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들을 리스트업 한 뒤 우리의 여행 경로에 최적인 장소들로 이번 여행의 맛집 라인업을 구성했다.
1. 용출횟집
-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서해안로 660
사실 가족여행으로 제주도를 가면 가족끼리 매번 찾아가는, 최소 10년 이상 다닌 우리 가족의 필수 방문 음식점이다. 다른 것은 안먹어도 이 곳은 꼭 가야하는 이여사의 법칙에 거스르지 않기 위해 제주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방문하는 일정으로 전진배치했다. 제주공항 가까이에 위치해 있어 제주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혹은 서울로 돌아가는 마지막 날 일정으로 잡곤 한다.
이곳은 회도 맛있긴 하지만, 별미는 깻잎에 회와 초밥을 얹고 젓갈무친 마늘쫑을 넣어 한입에 넣는 것이다. 이여사는 이 “깻잎+젓갈마늘쫑+초밥” 조합을 사랑한다. 그녀의 사랑을 실현시켜주는 것이 불효녀의 첫번째 선택이었다.
그 외에 나오는 반찬, 지리 미역국, 갓 튀겨져서 나오는 튀김도 매우 맛있다. 용두동에 위치해 있어 가게 창문 너머로 바로 용두암이 있는 제주의 바다를 만끽할 수 있는 점도 포인트다.
2. 핀크스 비오토피아
-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상천리 795
이여사와 묵었던 포도호텔의 바로 옆에 위치한 핀크스에 있는 식당이다. 제주의 맛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식당이 어디가 있을까 찾다가 우연히 이 곳의 “제주 한상” 메뉴를 보고선 ‘이거다!’하는 직관적인 느낌이 들어 바로 예약했다.
“제주 한상” 메뉴는 식전 음식, 제철 생선회, 통옥돔 깐풍, 흑돼지 오겹살과 양념문어구이, 은갈치조림, 전복 돌솥밥과 성게미역국, 디저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어느하나 제주스럽지 않은 메뉴가 없었다.
모든 메뉴가 매우 만족스러웠지만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메뉴는 통옥돔 깐풍과 반찬으로 나온 자리젓 김치다. 옥돔깐풍은 난생 듣도보도 한 적이 없어 매우 기대가 되는 메뉴였는데, 등장하는 비주얼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세번째 메뉴로 우리의 테이블 앞에 나타난 옥돔은 마치 하나의 예술작품 같이 튀겨져 알록달록한 보석으로 치장한 모습 같아 보였다. 한껏 꾸미고 나타난 옥돔을 해체하는 것이 다소 아까웠으나, 슬쩍 한 조각을 입에 넣으니 곧 옥돔이 내 입에서 통통 튀어오르는 듯했다. 깐풍소스가 옥돔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랐으며, 깐풍 소스를 이렇게나 맛있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 예쁘게 꾸미고 나온 옥돔은 애석하게도 순식간에 우리 모녀에 의해 사라졌다.
또한 생각하지 못한 스페셜 반찬 중 하나는 자리젓 김치였다. 자리젓 김치는 제주도에서 잡은 자리돔을 뼈째로 갈아서 젓갈베이스로 만든 김치다. 처음 입에 넣었을 때는 ‘이 강렬한 맛은 무엇이지?’ 라는 생각이 이 맛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내 자아와 열렬히 부딪혔다. 하지만 맛보면 맛볼수록 매력적인 그 강렬함은 내 낯가림을 어느 순간 무너뜨렸고 직원에 리필을 부탁해 한 접시를 더 먹어버렸다. 김치를 좋아하는 이여사 역시 자리젓 김치가 너무 맛있다 극찬하였고, 마침 자리젓 김치는 호텔에서 판매하는 아이템이었기에 불효녀는 그녀를 위해 자리젓 김치 5kg을 선물하였다.
이 외에도 사실 모든 메뉴가 맛있었고, 직원 서비스도 훌륭했다. 이여사가 다음에 또 오고 싶다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내 배도 부르고 마음도 불렀다.
3. 포도원 흑돼지
- 주소: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수목원길 51
이여사가 먹고 싶어 했던 흑돼지 맛집을 찾기 위해 검색창에 흑돼지 맛집을 치니 어마무시한 수의 가게들이 나온다. 정보가 지나치게 많으면 곧 정보 과다 노출로 인해 전두엽 기능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고 하는데, 이 때문인지 흑돼지가 내 전두엽을 흔들어 놓고 있는 듯했다. 그러다 예전에 나의 지인이 소개시켜준 포도원 흑돼지가 불현듯 떠올랐다. 구관이 명관이라 하지 않았던가. 예전에 먹어보고서는 맛있었다 생각했었기에 이미 나에게 1차 검증된 곳으로 이여사를 안내하기로 결심했다.
고기는 한번 초벌을 시켜 가져다 주고, 숯으로 조금 더 익혀 먹는데 고기가 꽤나 쫀득하고 육즙이 가득하다. 숯불에 구워먹으니 숯불 향이 배어 더 맛있게 느껴지는 듯하다. 육식을 그리 즐기지 않는 이여사지만 그녀 역시 포도원 흑돼지에 매료됐고, 최초 2인분만 시켜먹자 했던 그녀는 돌변해 1인분을 추가했다. 고깃집을 자발적으로 또 오겠다고 선언한 그녀의 모습이 다소 낯설기도 했지만 그 모습은 곧 내게 기쁨으로 다가왔다. 번외로 나는 이 곳의 파절임이 그렇게 맛있다. 파 리필을 대략 세 번은 한 것 같다.
이여사를 풍족하게 먹이겠다는 일념으로 찾은 맛집에서 어쩐지 내 입이 더 호강한 것 같다. 어찌되었든 이여사가 모두 맛있게 잘 먹어주니 감사했다. 불효녀의 단기 효녀 프로젝트는 다행히도 성황리에 종료되었다. 단기 효녀 프로젝트를 수행할 날이 앞으로 내게 얼마나 더 남았을까를 생각해 보면 마음이 조금 시리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싶다. 나는 프로젝트의 PM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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