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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으로부터의 사색/제주도 (2025)

[제주도 1화] 가파도에서 3시간 동안만 잠시 격리되어 있겠습니다

섬들을 생각할 때면 왜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이 일어나는 것일까? 난바다의 시원한 공기며 사방의 수평선으로 자유롭게 터진 바다를 섬 말고 어디서 만날 수 있으며 육체적 황홀을 경험하고 살 수 있는 곳이 섬 말고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섬에 가면 격리된다(isole). 섬(Ile)의 어원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섬, 혹은 ‘혼자뿐인’ 한 인간. 섬들, 혹은 ‘혼자씩일 뿐인’ 인간들.
장 그르니에 – 섬 (민음사, 2020) 중 일부

섬에 가면 세상과 조금은 떨어진 느낌이 든다. 바다에 둘러 쌓인 세상에 홀로 격리된 것 같기도 하지만 마주한 또 다른 세상 안에서 나는 자유와 평온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섬이 좋다. 어딘가 섬이 있는 여행지로 떠난 다면 나는 두려움 없이 배를 탄다.

나의 엄마 이여사와 함께 섬(제주도) 중의 섬인 가파도에 다녀왔다. 가파도는 제주도의 부속섬 중 네 번 째로 큰 섬으로, 가오리를 닮은 섬이자 파도에 파도가 더해지는 이름(加波)을 가진 섬이다. 호텔에서 조식을 든든히 챙겨먹고서는 또 다른 격리된 세계를 마주할 기대, 그리고 때마침 열린 청보리축제에 대한 기대가 더해져 한가득 부푼 마음으로 이여사와 함께 운진항 여객터미널로 향했다.

운진항 여객터미널에서 승선을 기다리는 중
가파도로 향하는 정기여객선

운진항에서부터 바다를 통통 튀며 건넌지 한 10분 정도 지나니 어느덧 나는 가파도에 두 발을 디디고 서있었다. 이날은 오후에 비 예보가 있어 가파도의 하늘은 흐리고 먹구름이 드리웠지만 흐리면 흐린대로 좋았다. 사람은 행복할 때가 있고, 슬플 때도 있으며 우울하기도 하며 흥에 겨울 때가 있다. 그 어떤 모습도 그 사람의 일부이며, 그 일부란 조각들을 하나씩 모아가는 행복이 있다. 가파도에겐 해가 쨍쨍한 모습도 있겠지만, 흐린 모습 역시 가파도의 일부이기에 나는 그 일부 중 하나를 알게 되어 기뻤을 뿐이었다.

이여사와 나는 가파도의 길을 따라 뚜벅뚜벅 걷기 시작했다. 해안가와 마주한 바다길을 따라 걷다가, 문득 섬 안쪽으로 가고 싶어지면 마음대로 방향을 틀어 가파도의 구석구석을 들추어 봤다. 그러다 우연히 유채꽃밭을 마주했는데, 이는 마치 황금이 수 없이 들판에 펼쳐진 모습이었다. 군데군데 펼쳐있는 청보리도 볼 수 있었는데 아직은 길게 자라지 않은 탓인지 내 예상 보다는 꼬마 청보리였다.

가파도를 구경하며
가파도의 유채꽃밭 1
가파도의 유채꽃밭 2

유채꽃과 청보리를 뒤로하고 이리저리 길을 누비다가 우연히 불턱 이라는 것을 마주했다. 불턱이란 것은 난생 처음 보는 것이었는데, 이는 해녀들의 탈의실이자 공동체 공간으로 해녀들이 물질을 하면서 옷을 갈아 입거나 불을 쬐며 쉬는 곳이었다 한다. 거친 바닷바람과 찬 바닷물 속에서 생사를 오가는 해녀들에게 불턱은 체온을 회복하고 생명을 지키는 일종의 보호막 이었을 테다. 또 해녀들은 불턱에 모여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그날의 바다 상황과 어장 정보, 물질 요령 같은 실질적인 지식과 경험을 나눴을 뿐만 아니라, 서로 힘든 일을 서로 털어놓고, 따뜻한 음식을 나누며 마음의 위로를 얻었다.

가파도의 불턱
가까이서 본 불턱

물질하던 옷 벗어 말리며 / 가슴 속 저 밑바닥 속 / 한 줌 한도 꺼내 말린다 / 비바람 치는 날 / 바닷속 헤매며 떠올리던 꿈 / 누구에게 주려 했는가 / 오늘도 불턱에 지핀 장작불에 / 무명옷 말리며 / 바람 잦길 비는 해녀 순이
- 김승기 ‘불턱’-

해녀들은 불턱에서 옷을 벗어 말리고, 삶의 시름과 한을 불에 꺼내 말렸다. 그 모습을 생각하니 어쩐지 마음 한 켠이 먹먹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녀들의 강인함이 느껴지는 것 같다. 또 돌아다니면서 익살맞은 다양한 모습의 돌하르방을 마주했는데, 나를 보며 웃어 주는 이 돌하르방들을 보니 나도 덩달아 같이 웃게 됐다.

익살맞은 돌하르방들

이여사와 함께 조잘조잘 떠들며 꽃도 보고, 불턱도 보고, 돌하르방도 보고선 선착장으로 향하는 길엔 해안가를 따라 걸었다. 해안가는 내가 물 건너온 세계와 지금 내가 밟고 서 있는 세계의 경계선이다. 저 멀리 보이는 세계에서 고립된 여기, 이 경계선에서 고립된 나. 하지만 내가 있던 세계와의 단절은 내게 속박으로부터의 해방과 쉼을 허락했다. 어쩌면 이를 현실 도피로 볼 수도 있겠지만 현실에서 잠시 떨어지는 건 오히려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보려해도 보이지 않던 게 오히려 한발짝 뒤로 물러나면 지나치리 선명하게 보이기에.

작고 아담한 가파도를 둘러보는 데에는 2시간도 걸리지 않았고, 정해진 배 시간에 맞춰 다시 운진항으로 돌아가기 까지 대략 3시간 정도를 가파도에 체류했다. 비록 3시간의 고립이었지만 3시간이든 2시간이든 나를 뒤로 감춰주는 섬은 언제나 좋다. 스스로 한 발자국 물러날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면, 해녀들의 강인함을 느끼고 싶을 때면 나는 언제든 다시 가파도를 찾겠다.

건너온 세계와의 경계선을 마주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