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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으로부터의 사색/미국, 뉴욕 (2024)

[뉴욕 11화] 내가 새로 정의한 뉴욕의 색과 뉴욕으로부터의 컬러 테라피

뉴욕을 생각하면 여러가지 색이 떠오른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노란색인데 이는 택시 때문일 것이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면 늘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 노란택시여서 내 뇌리에 “뉴욕=노란색” 이라는 공식이 박혀 있는 지도 모르겠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미술품을 잔뜩 보고선 엽서를 몇 장 사왔다. 미국이니 만큼 최대한 미국 스러운 엽서를 여러 장 사왔는데 그 중 하나가 앤디워홀의 “금빛 마릴린 먼로(Gold Marilyn Monroe)” 다. 이 엽서가 갖고 싶었던 이유는 앤디워홀의 작품이라는 것과, 미국을 대표하는 배우인 마릴린 먼로가 그려져 있다는 점 그리고 “노란색” 이 가득했다는 점이다. 나는 노란색이 주는 따뜻함이 좋다.

레고스토어에 있는 노란 뉴욕 택시
MoMA 에서 사온 앤디워홀 작품 엽서

반면 노란색과 반대로 차가움을 주는 회색이 떠오르기도 한다. 한없는 스카이라인이 펼쳐진 콘크리트 건물과 아스팔트 도로가 만들어내는 분위기 탓이다. 그 유명한 5번가를 걸어도, 월스트리트를 걸어도 온통 거대한 높이의 회색 파도가 넘실거린다. 마치 패기 넘치는 젊은이들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내가 더 크고 잘났다며 서로 으르렁 대는 느낌이랄까.

5번가 방향으로 펼쳐진 회색의 향연

또 떠오르는 색은 갈색이다. 뉴욕의 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갈색 건물들을 간간히 볼 수 있는데 여기에는 나름의 역사적 배경이 있는 듯하다. 1835년에 뉴욕에 초대형 화재가 있었는데 이 화재 사건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경제적 피해를 입힌 화재중 하나였다. 이 사건 이후 새로운 건축법이 제정되어 목조 건축 건설이 제한되었고, 벽돌, 석재, 대리석과 같은 내화성 건축 자재로 건물을 지어야 했다. 특히 갈색 사암이 내구성이 좋고 쉽게 구할 수 있었던 탓에 1800년대 뉴욕은 갈색으로 빛났다. 하지만 1900년대 들어 세계의 수도가 된 뉴욕은 갈색을 모조리 밀어내고 온통 회색을 입혀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련한 우리의 갈색 들은 곳곳에 살아남아 회색 들이 가지지 못한 뉴욕의 오랜 역사를 알려주고 있다.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갈색 건물들

하지만 또 밤이 완연한 뉴욕을 떠올리면 세상 화려한 다채로운 무지개가 떠오른다. 각가지 색으로 빛나는 사이니지에 둘러 쌓여 있자면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어 비현실의 세계로 빨려 들어온 느낌이다. 뉴욕 한복판에 있는 여러 상점들을 들어가면 색채는 한층 더 알록달록해진다. 5번가에 있는 레고스토어에 가면 세상에 없는 색이 없다. 타임스퀘어 근처의 엠앤엠즈 월드 역시 용호상박이다.

엠앤엠즈 월드 내부
화려한 색채를 뽐내는 타임스퀘어 1
화려한 색채를 뽐내는 타임스퀘어 2

여러가지 물감을 한꺼번에 섞으면 회색도 아니고 그렇다고 검정색도 아닌 애매하게 어두운 색이 만들어 진다. 그런 이유에서 인지 누군가는(아마도 대부분은) 뉴욕을 보며 다양한 색을 포용한 화려한 도시라 생각하는 반면 또다른 누군가는 오히려 어둡다 느끼는 지도 모른다.

나는 이번 뉴욕 여행을 통해 뉴욕의 색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지니게 됐다. 그 색이라 함은 하나는 루즈밸트 아일랜드 트램에서 본 선셋에서 나온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뉴욕에서의 마지막 밤이 비춰낸 광경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 두 장면들이 내보인 색은 노란색, 갈색, 빨간색 등 하나의 색상으로 이름 지을 수 없다. 다만 누군가 나에게 뉴욕이 무슨 색이냐 묻는다면 아마도 난 이 두 장면을 떠올리며 노자(老子) 선생이 도(道)를 설명한 것처럼 다소 애매하지만 서도 확실하게 대답할 것 같다. “어두우면서도 밝으며 심연해지면서도 회복을 주는 색”이라고. 비록 아주 짧은 기간이었지만 내가 보고 느낀 뉴욕의 색은 내 감정을 치유해주었고, 바람 빠진 풍선 같은 내 인생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어 줬다. 컬러 테라피스트로서의 뉴욕에 감사하며 인생의 적절한 시기에 이 색을 맞이할 수 있게 해준 모든 인연에 감사한다.

루즈밸트 아일랜드 트렘에서의 선셋

해가 질 무렵의 뉴욕
뉴저지에서 바라본 맨해튼의 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