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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으로부터의 사색/미국, 뉴욕 (2024)

[뉴욕 10화] 자유의 여신상을 보며 책임과 고독을 나에게 묻다

뉴욕에 오기 전부터 많은 것들이 보고 싶었지만 그 중 자유의 여신상 만큼은 꼭 내 눈에 담고 싶었다. 물론 뉴욕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라는 이유도 있지만 ‘자유’라는 상징성 때문이다. 그간 나를 옥죄고 속박하고 있던 모든 것들을 강력히 상쇄할 무언가가 필요했기에 자유를 상징하는 이 여신상이 꽤나 보고싶었던 것 같다.

청명하고 날이 좋았던 어느 날, 나의 여행 메이트와 함께 그리도 고대하던 자유의 여신상을 보기 위해 배터리 파크로 향했다. 배터리 파크 부근의 화이트홀 페리 터미널에서 페리를 탑승하면 리버티 아일랜드에 내리진 못하지만 강 위에서 위엄 있는 왕관을 쓰고 횃불을 들고 있는 위풍당당한 그녀를 마주할 수 있다.

페리 터미널엔 사람이 가득했고 그 큰 페리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탑승했다. 그리고 명당이라 일컬어 지는 페리의 오른면은 탑승객들에 순식간에 점령됐다. 비록 수많은 뒤통수들이 내 시야를 다소 방해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발을 붙잡아 두고 있던 육지를 떠나 페리를 타고 강을 가로질러 가는 그 행위 자체가 나에겐 모종의 해방이었기에 충분히 기뻤다.

한편으론 페리를 타고 떠난 내 모습이 흡사 ‘허클베리 핀’ 같았다.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허클베리는 억압된 현실(학대하는 아버지)로 부터 자유를 갈망하며 동행인(흑인 노예 짐)과 함께 뗏목을 타고 미시시피 강을 여행하며 모험을 해 나간다. 나 역시 사도세자 마냥 숨도 안 쉬어 지는 뒤주에 갇힌 것 같은 현실에서 탈출하여 나의 여행 메이트와 함께 (뗏목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최첨단인) 페리를 타고 허드슨 강 물줄기를 따라 자유를 찾아 떠났다.

선상에 오른 한클베리 핀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아래 자유의 여신 그녀가 어서 큼지막 하게 나타나길 기다리며 난간에 턱을 괴고는 나를 향해 힘껏 달려오는 바람을 맞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저 멀리 그녀의 실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한 발치 두 발치 다가올수록 세계를 비추는 자유의 빛을 상징하는 횃불과 미국 독립선언일이 새겨진 석판을 든 그녀가 디테일해진다. 내 눈앞에 선명히도 나타난 그녀는 물길을 가로질러 마치 너는 이제 자유라고, 너의 독립을 누구보다 축하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페리 위에서 바라본 자유의 여신상

나의 자유와 독립을 응원해 주는 그녀를 보며 한편으론 고독과 책임의 무게가 떠올랐다. 자유와 책임 그리고 자유와 고독은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자유를 누리는 데엔 반드시 책임이 뒤따르며 책임과 통제가 동반되지 않은 자유는 곧 방종이 된다. 또한 그 누구의 간섭 없이 주체적으로, 홀로 사유하고 결정하는 과정은 필히 나를 고독하게 만든다.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사람들은 봉건제 이후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자유를 획득했지만 자유에 반드시 동반되는 고독과 책임의 무게에 지쳐 새로운 의존과 종속을 추구하며 파시즘과 전체주의에 열광하게 됐다 고찰했다.

하지만 난 심연의 고독과 통렬한 책임을 이유로 자유를 두려워하거나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인어공주가 다리를 얻는 대신 목소리를 잃는 대가를 치뤘듯 나는 자유를 얻는 대신 책임과 고독을 짊어지기로 했다. 책임과 고독은 받아들이면서도 더욱 나 다운 삶을 살기위한 용기와 강인함을 지닐 수 있다면 자유란 충분히 누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허클베리 핀은 이런 저런 역경과 고난을 거친 후, 속박된 세계이기도 하지만 안락한 세계인 펠프스 부부의 양자로 사는 삶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를 박차고 본인의 자유 의지로 새로운 서부의 인디언 영토로 떠날 결심을 한다. 그러나 한클베리 핀은 새로운 미지의 세계가 아닌 제쳐 두고 온 일상을 책임지러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날의 다짐처럼 비록 속박의 세계에 있을 지라도 최소한으로 실현할 수 있는 나의 자유 의지만큼은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중이다. 하지만 이따금씩 고독과 책임의 무게에 힘이 부칠 때가 찾아온다. 그럴 땐 뉴욕에서 짊어지고 온 자유의 상징물들을 바라보며 자유의 여신상이 건네준 자유와 독립의 응원을 떠올리곤 한다.

휘트니 미술관에서 본 어느 한 작품
뉴욕 레고스토어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레고(왼)와 내가 사온 자유의 여신상 레고 키링(우)
디즈니 스토어에서 사온 자유의 여신 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