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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으로부터의 사색/미국, 뉴욕 (2024)

[뉴욕 8-1화] 커피에 정신나간 여자의 뉴욕 커피 탐구 1

만약 의사가 “앞으로 커피 한 모금이라도 마시면 죽어요” 라고 말을 한다면 “네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한 뒤 집에 돌아가 따뜻하게 내린 드립 한잔을 마시고 죽겠다. 커피를 향한 나의 애정의 정도다. 애정의 정도가 높은 만큼 커피 탐구 생활 역시 매우 활발히 하고 있다.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케냐, 온두라스 등등 각각의 원산지별, 품종별, 그리고 로스터리 별로 세상의 모든 원두를 모두 맛보고 느껴보겠다는 기세로 현재 각종 로스터리를 찾아내 원두를 직접 사서 마시는 중이다.

밥은 대충 때워도 커피에 대충이란 없다. 여행 가서도 맛집은 안 찾아도 카페는 눈에 불을 켜고 찾는다. 나의 뉴욕 동행인이 “제발 커피 말고 음식 먹을 식당 좀 찾아보지 않으련?” 이라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나는 이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커피 지도를 만들어 낸다. 카페 투어에서 나의 원칙은 직접 볶은 원두로 커피를 내리는 ‘로스터리’ 카페에 가는 것이다. 커피 천국인 뉴욕에서도 역시 프랜차이즈형 카페는 배제하고 원두를 직접 볶아내는 로스터리를 짧은 일정 속에서도 기어코 찾아내 틈틈이 돌아다녔다. 아래는 내가 갔던 원두를 파는 카페들이다.


1. 뉴욕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 위치: 61 9th Ave, New York, NY 10011

첼시 마켓 근처에 있는 뉴욕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는 전 세계에 단 6개 밖에 없는 리저브 로스터리다. 규모 또한 엄청나서 Arriviamo 바(커피 칵테일 등), 일반 매장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베이커리 제품, 천장을 가로지르는 파이프와 30피트 높이의 원두 보관 탱크가 있는 로스팅 구역, MD 판매 공간이 구비되어있다.

뉴욕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토리 입구
팔고 있는 다양한 디저트들
뉴욕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 내부
뉴욕 로스터리만의 특별한 MD들

특히나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엄청난 크기의 대형 로스팅 기계였는데, 사람을 넣으면 사람이 금방 다크 로스팅 될 것 같은 위엄을 뽐냈다. 본래 스타벅스 커피를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특별한 곳이니 갓 내린 아메리카노를 한 잔 주문하고 이곳에서만 파는 뉴욕 원두를 사왔다. 한국의 스타벅스 아메리카노는 탄맛이 가득한데 이날 마신 아메리카노는 탄맛없이 부드러운 밸런스가 좋게 느껴졌다.

초대형 로스팅 기계 1
초대형 로스팅 기계 2
이날 마신 아메리카노 숏 한잔

이 맛있는 스타벅스 커피를 손에 꼭 쥐고서는 한 모금씩 마시며 하이라인을 걸었다. 하이라인은 화물 운송을 위해 건설된 고가 철도였지만 1980년 마지막 화물 열차가 운행된 후 수십 년간 방치됐다. 하지만 ‘프렌즈 오브 하이라인’이라는 단체를 통해 공공 재생 프로젝트가 가동됐고 덕분에 도시와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하이라인은 차도 위에 만들어졌기에 걷는 내내 자동차가 보이지 않으며 걸리적 거리는 게 없다. 나보다 빠르게 지나가는 차량이 없는, 모든 속도가 나와 일치하는 하이라인의 공간의 속도는 나를 걷는 내내 편안하게 했다. 이런 마음이었기에 어쩌면 더 뉴욕의 커피가 더 맛있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실은 뉴욕발 사대주의 효과 일지도 모르지만.

한국에 돌아와선 뉴욕 에디션 원두를 매일 출근 전 집에서 모카포트로 내린 후 텀블러에 담아 회사에서 모닝커피로 즐겨마셨다. 모니터 앞에 앉아 업무시작 전 커피를 마시고 있자면 뉴욕의 추억이 몽글몽글 떠올라 비록 현실은 서울의 작은 한 켠에 자리잡고 있지만 잠시나마 광활한 뉴욕으로 떠난 기분이었다.


2. 스타벅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점

  • 위치: Ste 105, Empire State Building, 350 5th Ave, New York, NY 10118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있는 스타벅스 역시 리저브 매장이다. 내부는 심플하면서도 모던하며 곳곳에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판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특별 MD 등을 배치해 놔 매장 특유의 컨셉으로 잘 꾸며놨다. 매장 1층은 일반적인 커피 매장, 2층은 커피와 칵테일 라운지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점에도 뉴욕 리저브 로스터리 매장처럼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특별한 원두(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마이크로 블렌드)가 있다. 이 원두를 살까말까 여러 번을 들었다 놨다 반복했다. 치열한 고민 끝에 결국 사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이미 원두 보따리상 마냥 캐리어가 원두로 미어 터지기 직전이었고, 스타벅스 커피는 별로라는 약간의 편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스타벅스 뉴욕 원두가 생각보다 훌륭했던 탓에 후회가 막심했다. 그냥 살 걸. 캐리어에 어떻게 든 쑤셔 넣어볼 걸. 사왔다면 매일 아침 엠파이어 블렌드를 마시며 잠시나마 행복하게 뉴욕의 감성에 빠졌을 텐데 하는 소용없는 미련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누군가 나에게 살까말까 할 때는 사지 말라고 했는데, 그 말 한사람 누구냐 나와라.

스타벅스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 점 내부 1
스타벅스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 점 내부 1
스타벅스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 점 내부 2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안에서 아메리카노 한잔


3. 버라이어티 커피 (Variety Coffee)

  • 위치: 1269 Lexington Ave, New York, NY 10028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구경하고 센트럴 파크를 걷고 나니 커피를 한잔 마셔야 겠다는 강렬한 욕망이 일었다. 그리하여 구글맵을 키고서 사전에 별표 딱지를 붙여 둔 카페 중 근거리에 있는 곳을 가자 생각했다. 그 결과 버라이어티 커피(렉싱턴 애비뉴 지점)가 낙점됐고 나는 이 곳을 찾아가기 위해 어퍼이스트 사이드를 걸었다. 뉴욕의 거리는 선택권이 많다. 계속하여 마주하는 사거리들은 직진이냐 좌회전이냐 우회전이냐 혹은 빽도냐 끊임없이 나에게 묻고 선택을 요구한다. 하지만 모름지기 길이란 가는 사람 마음이다. 최단거리가 아니어도 된다. 1,000보 만으로도 갈 수 있는 길을 2,000보, 혹은 3,000보를 걸어도 괜찮다. 그리하여 나는 수도 없이 선택을 묻는 어퍼이스트의 사거리들에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직진하다가 꺾고 꺾기를 반복했다. 어퍼이스트의 사거리들 역시 그런 나의 선택을 존중해 주었다.

어퍼이스트를 걸으며

마침내 도착한 버라이어티 커피 렉싱턴 애미뉴 지점은 앉을 자리 없이 만석이었고 사람들은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주말을 즐기고 있었다. 사거리들과 다시 협상을 하며 뉴욕을 누벼봐야 겠단 생각에 테이크아웃으로 아메리카노를 한잔 시켰다. 커피는 느낌에 미디엄 로스팅 정도 였고 적절한 산미와 고소함이 잘 어우러져 있었다.

버라이어티 커피 매장 앞
버라이어티 커피 매장 내부
버라이어티 커피의 아메리카노

커피를 사며 원두도 하나 같이 구입했다. 보통 싱글오리진을 좋아하지만 당시 매장에 있는 상품은 블렌드 원두 뿐이었다. 그래서 심사숙고 끝에 럭키샷(Lucky Shot)이라는 원두를 골랐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에티오피아와 콜롬비아의 조합이라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이름이 좋았다. 이 태평양을 건넌 원두는 부디 럭키한 일이 많이 생기길 항상 개인적으로 바라고 있는 내 최측근에게 선물했는데 과연 나의 소망처럼 그에게 럭키한 일이 생겼는지는 잘 모르겠다. 올해 그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쇠한 건강을 회복하고 잘 먹으며 부디 잘 잠에 드는 것이다. 그에게는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평온함을 회복하는 게 럭키한 일이다.

버라이어티 커피의 럭키샷 원두

(출처: 홈페이지)

(너무 길어 2화로 쪼갰다. 뉴욕 커피 이야기는 8-2 화에서 계속,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