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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성수동 어페어커피] 평화로운 뚝도시장에서 기괴한 하이브리드 감정을 느끼며

  • 방문지점: 어페어 커피 (서울 성동구 성수이로6길 11 1층)
  • 마신커피: 케냐 가타이티 AA TOP Washed (노트: 자몽, 키위, 다크초콜릿)
  • 구입원두: 에티오피아 게뎁 가르가리 구티티 G1 (노트: 베르가못, 레몬, 백도)

대도시 아파트촌에서 태어나 일평생을 살아온 나에게 시장은 다소 낯선 광경이다. 하지만 이 낯선 감정은 상당히 흥미롭다. 나는 해외 여행을 갈 때 시장을 일부러 찾아 구경할 만큼 생소하지만 신기한 시장 구경을 고대한다. 평생을 백화점, 쇼핑몰만 다닌 나에게 상인들의 언행은 다소 투박하다. 하지만 과잉 친절 혹은 미소 속에 숨겨진 듯한 가식의 일면은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 그리고 손님을 방치해 두는 그들의 거친 매력이 오히려 나를 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평일 낮 시간이어서 그런지 시장은 매우 한산했다. 온화하고 쾌청한 날씨에 한산한 시장 거리를 걸으니 한껏 평온했다. 사람 없는 고요함과 쾌적함을 너무도 좋아하는 나이지만 지나치게 한산하고 텅 빈 거리에 약간의 불편감도 들었다. 시장 상인들의 퍽퍽한 사정이 내 살갗에 거침없이 스며드는 것 같아서.

뚝도시장 입구
한산한 뚝도시장 거리

좋기도 하면서 싫기도 한, 마치 스핑크스 같은 기괴한 형태의 감정을 안은 채 뚝도시장 골목 안에 위치한 어페어커피로 들어섰다. 시장 안쪽에 위치한 만큼 그 어떤 소음과 소란스러움도 없었다. 1차 합격이다. 그리고 빨간색으로 포인트를 준 인테리어도 마음에 들었다. 두번째 합격점이다. 이제 커피만 마음에 들면 더할 나위 없다.

어페어 커피로 향하는 골목길
어페어 커피 입구

매대 앞에 서서 원두를 골라보려 하니 사장님이 도와주시겠다며 친히 나서 주셨다. 평소 말수 없는 나지만 커피집 사장님 앞에서는 뭐 그리 할말이 많아지는지 이 에티오피아는 어떤가요? 로스팅 포인트는 어떻게 되나요? 이 옴볼리곤 디카페인 원두는 가공법이 뭔가요? 구황작물 맛이 나던가요? 등등 한껏 질문공세가 이어진다. 이런 나를 마주하자면 이따금씩 생소하다. 낯선 이를 반기지도 않고, 대화를 즐겨하는 편도 아닌데 왜 나는 유독 커피 앞에서 만큼은 유해지고 말이 많아질까? 하지만 이런 내가 싫지는 않다. 되려 숨겨진 또 다른 나를 꺼내 볼 수 있어 흥미롭다. 앞으로 누군가를 만나 새로운 인연을 이어가게 된다면 나를 이렇게 만들어 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나도 모르는 나를 발견하게 해주는 사람, 그리고 그 모습에 함께 웃으며 기뻐해줄 사람.

어페어 커피 매장 내부 1
어페어 커피 매장 내부 2

사장님의 추천에 힘입어 에티오피아 원두와 케냐 드립 한잔을 함께 주문했다. 사장님은 내 취향에 맞는 디카페인 원두가 다음주 입고될 예정이라 했다. 구매한 커피와 원두를 그에게 받아 들고서는 조만간 다시 방문하여 그 디카페인 커피를 마셔보겠노란 말을 남기고 카페를 나왔다.

따뜻하게 적정온도로 아주 잘 내려진 케냐를 한 모금 마시고는 최종 합격점을 찍었다. 그리곤 커피를 든 채 사람과 각종 소음에 부대끼며 사는 내 일상과는 전혀 상이한 이 시장 골목길에 잠시 우두커니 서있었다. 사람으로 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 세상의 온갖 소음과 경멸로 부터 멀어지고 싶을 때 찾아올 수 있는 은신처를 발굴해 낸 것 같아 기뻤다. 하지만 시장 거리는 조금 더 활기차고 북적인다면 내 평온함은 다소 깨질지언정 마음은 더 편안할 것 같다는, 또 하나의 반인반수 같은 생각을 실컷 하고선 논리와 근거가 명확하며 모순이 없어야 하는 내 일상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케냐 가타이티 AA TOP Washed

<후일담> 그날 같이 구매한 에티오피아 게뎁 원두는 그 다음날 직접 핸드드립으로 마셨는데 케냐보다 훨씬 더 맛있었다. 100g이 아닌 200g을 샀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