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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서초동 카페 프리퍼 (Prefer, 나의 선호도 고착은 유아적 태도인가, 나이 듦의 부산물인가?)

  • 방문지점: 프리퍼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5길 4 성원빌딩 1층)
  • 구입원두: 온두라스 라 마라빌라 파라이네마 (Washed)
  • 노트: 캐슈넛, 슈가케인, 감, 탠저린

프리퍼 전경

우리 동네의 나름 인기 카페인 프리퍼는 언제 가도 사람이 많다. 커피는 커피대로 괜찮은 데다가, 맛있는 빵들도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날 역시 사람이 바글바글했고 원두한봉을 계산하기까지 앞선 주문을 기다려야 하는 탓에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항상 손님이 많아서 정신없는 탓인지 갈 때마다 사실 종업원들이 그리 친절하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씩 찾게 되는 이유는 우선 원두가 괜찮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원두를 사면 서비스로 커피를 한잔 제공해주는데 맛있는 커피를 덤으로 챙기는 기쁨이 나름 쏠쏠하기 때문이다.

프리퍼 내부
만석인 모습
팔고 있는 각종 빵들

프리퍼에 방문한 그날의 원두 라인업은 가히 나의 프리퍼런스(Preference, 선호)에 부합하는 것들이 즐비했다. 에티오피아, 코스타리카, 케냐, 온두라스 등등. 프리퍼에서 마지막으로 사간 원두는 코스타리카 였는데 이번에는 온두라스를 골랐다. 최근 코스타리카가 마시고 싶어 또 코스타리카를 사볼까 하다가 프리퍼에서 온두라스를 마셔본 적이 없기에 프리퍼에서 볶아낸 온두라스는 어떤 맛일까 궁금증이 돋아 온두라스를 구입했다. 온두라스는 보통 단맛 그리고 쎄지 않은 감귤류의 신맛이 조화를 이루는 데 프리퍼에서 사온 온두라스 역시 단맛과 신맛이 고루 조화를 이루는 아주 맛있는 원두였다. 비록 종업원들은 그리 친절하지 않아도 역시 가끔은 사먹어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다양한 원두 라인업
드립백 제품

커피를 마시면서 문득 프리퍼라는 이름을 곱씹으며 나는 인생에서 무엇을 선호하나 생각해 봤다.

  • 커피, 다크로스팅 보다는 라이트로스팅을 선호한다.
  • 영화, 어둡고 심오한 영화보다는 밝고 희망찬 영화를 선호한다.
  • 음악, 느리고 음울한 리듬보다는 쾌활하고 신명나는 리듬을 선호한다.
  • 공간, 사람이 많은 정신없는 공간 보다는 한산하고 적막한 공간을 선호한다.
  • 교류, 많은 사람과 폭넓은 교류 보다는 한정된 사람과 깊은 교류를 선호한다.
  • 계획, 즉흥적인 것 보다는 계획하에 움직이는 것을 선호한다.

위의 것들 중 영화, 계획 등에 대한 선호도는 시간이 흐르며 나의 사회적, 가치관의 변화로 수차례 변하였지만, 반면에 어릴 적 보다 더욱 선호 경향이 심화된 것들도 있다. 예를 들면 공간, 교류에 대한 선호다. 사람 많은 곳을 피해 인적이 드문 장소를 골라 다니다 보니 강남 고속터미널 같은 곳에 잠시 발을 디디면 곧 공황장애로 주저앉기 직전이 되었고, 사람 역시 만나는 사람만 계속해서 만나게 된다. 이런 나를 보며 자기 강화적 고립 상태가 되어가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내 문제점을 알면서도 변화를 주저하는 나는 아직 유아적 정신 상태에 머무르는 걸까, 아니면 그저 늙어버린 것일까? 유아적 정신 상태라면 그릇됨을 인정하고 고치려는 성인의 태도를 갖춰야 할 것이고, 그저 늙어버린 것이라면 내 나이다운 젊음으로 회귀해야 할 터인데, 왜 나는 이도 저도 인정하고 싶지 않고 아무 조치도 취하고 싶지 않은 걸까? 한편으론 그냥 초딩 혹은 노인네 같이 살면 어디가 잘못되는 건가 싶은 생각을 하며 누워 버렸다.

밝은 탠저린 맛이 가득 느껴졌던 온두라스 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