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문지점: 어라운드데이 (서울 성동구 서울숲2길 24-1)
- 먹은 것: 아이스 아메리카노, 피스타치오 크림라떼, 테린느(초코&말차)
대개 커피를 마실 적엔 커피 맛이 희석되는 것이 싫어 디저트를 곁들여 먹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이날 카페 방문의 주목적은 커피가 아닌 디저트였기 때문에 나의 직장상사와 점심 식사 후 방문했다. 성수동엔 워낙 카페와 베이커리가 즐비해 즐길 수 있는 디저트류가 많다. 그 많은 카페 중 어라운드데이에 간 이유는 명확하다. 테린느를 먹기 위해서였다.
테린느는 본래 프랑스 요리에서 유래한 용어인데 원래의 단어 의미는 ‘도자기로 만든 사각형 그릇’이며, 이 그릇에 채워 오븐에서 구운 후 차게 식혀 잘라내는 요리를 지칭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 형태의 테린느는 일본에서 개발되었다 한다. 테린느는 굉장히 농밀하고 쫀득한 식감을 자랑하는데 브라우니 보다는 로이스 생초콜릿에 가까운 느낌이 난다. 최근엔 파는 곳이 많이 늘어난 듯 보이나 생각보다 파는 곳이 그리 많진 않아 테린느가 메뉴에 있으면 한 번씩 시켜보는 편이다.
내가 테린느를 좋아하는 이유는 특유의 식감과 진하게 느껴지는 맛 때문이다. 다소 듬성듬성하고 퐁신한 느낌의 제과류(예: 휘낭시에, 카스텔라, 쉬폰케익, 소보로빵, 머핀 등)는 좋아하지 않는데 그러한 것들은 입에 넣으면 순식간에 사라져 본연의 맛이 무엇이었는지가 매우 희미하게 느껴진다. 디저트든 커피든 밀도가 높고 충분한 향미를 느낄 수 있는 대상을 나는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흐리멍텅하지 않은, 고유의 색채를 가지고 진득한 자세로 자기만의 농밀한 향과 멋을 풍기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집 저집에서 테린느를 먹어보면 가게마다 맛, 식감 그리고 표면의 윤기가 대개 다르다. 어떤 가게에서 내어주는 테린느는 밀도가 떨어져 포크를 대면 쉽사리 파스스 부서지는 반면, 어떠한 가게의 테린느는 부드러운 버터를 나이프로 잘라내는 것처럼 스무스하며 푸석하게 떨어지는 가루 하나 없다. 윤기 역시 마찬가지다. 어떠한 가게의 테린느는 겉보기에도 매말라 조만간 거북이 등짝처럼 갈라질 것 같아 보이지만, 또 어떠한 가게의 테린느는 발을 대면 바로 미끄러져 전치 8주 이상을 선고받을 듯한 겉모습을 자랑한다.
위와 같은 차이가 극명하게 나는 이유는 제조 방식 때문으로 보이는데 넣는 재료와 재료의 비율의 탓도 있겠지만 온도와 숙성 방식이 크게 영향을 주는 듯하다. 높은 온도에서 빠르게 구워내면 겉이 딱딱해지고 속이 푸석해지기에 낮은 온도에서 중탕방식으로 천천히 갖고 구워내야 촉촉하고 쫀득한 식감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숙성 시간이 길수록 맛과 식감이 좋아져 완전히 식힌 후 냉장고에서 얼마간 숙성을 시켜야 밀도와 풍미가 극대화된다 한다.
테린느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해본다. 과연 나는 잘 만들어진 테린느 같은 사람일까? 촉촉하고 꾸덕한 질감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고품질의 원재료(초콜렛, 버터 등)가 아닌, 그저 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품질 낮은 밀가루 같은 것들만 인생에 잔뜩 붓고 있지는 않은가? 일정하게 낮은 온도에서 충분한 인내와 시간을 갖고 구워내야 하는데 그저 빠른 성취에 급급하여 불 같은 온도로 당장의 결실만을 추구하고 있진 않은가? 숙성의 시간이 필요한데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다 내팽겨쳐 버리고 포기하고 있진 않은가? 그렇다면 나는 결국 내가 싫어하는 푸석한 류의 테린느가 아닌가? 농밀하고 밀도 있으며 깊고 풍부한 맛을 내는 사람을 좋아하면서, 정작 내 자신이 정말 그런 사람인지는 한번 되짚어볼 문제다.
어라운드데이의 테린느는 꽤나 단단하고 묵직했으며 적당히 쫀득했다. 포크를 대면 크게 바스러지는 것 없이 잘 잘렸다. 조금 더 촉촉했으면 금상첨화였을테지만 이 정도면 나름 괜찮은 축인 것 같다. 원랜 초코테린느 하나만 시켰으나, 말차를 좋아하는 나는 말차맛도 궁금해 말차를 하나 더 시켜봤다. 말차테린느는 말차맛이 조금 더 깊고 진하게 느껴졌으면 좋았을 듯싶다. 어쨌거나 두가지 다 맛은 있어서 남김 없이 다 해치웠다. 평범한 하루 일과 속 한줄기 기쁨이고 재미였다.
'커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초동 카페 프리퍼 (Prefer, 나의 선호도 고착은 유아적 태도인가, 나이 듦의 부산물인가?) (0) | 2025.01.08 |
---|---|
서초동 룰(LULL)커피 (Love yoU aLL, Love Actually Is All Around) (0) | 2025.01.01 |
성수동 식스디그리스 라떼바 (화사한 맛의 롱블랙과 호주 추억팔이) (0) | 2024.12.21 |
디카페인 원정대의 디카페인 Pick 1. 엘카페 셀렉션 디카페인 (0) | 2024.12.18 |
100년만의 폭우 속 제주도 구좌 하토우 커피 로스터스 (0) | 2024.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