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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압구정 벙커컴퍼니 Bunker#3 Winy Berry (부제: Life is Between B and D)

  • 방문지점: 벙커컴퍼니 압구정점(서울 강남구 언주로167길 23)
  • 마신커피: Bunker#3 Winy Berry (Ethiopia Sidamo Bensa Kelada G1 74158 Natural, Colombia Villarazo Armenia Quindio Castillo Honey(Winy yeast, Strawberry), Colombia Villarazo Armenia Quindio Castillo Honey(Tartaric acid, Cinnamon))
  • 노트: 농밀한 과일 

벙커컴퍼니의 Winy Berry

 

 아주 더운 한 여름날, 점심을 배불리 먹고선 커피를 한잔 하기 위해 벙커컴퍼니에 찾아갔다. 생긴 입구가 전혀 카페처럼 생기지 않아서 '이곳이 내가 찾는 그곳이 맞는가?'를 문밖에서 한참을 쳐다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이내 ‘이름답게 매장 컨셉을 잘 잡았군’ 이라 생각했다. 

 싱글오리진 필터커피를 마실 수도 있었지만 어쩐지 Winy Berry 라는 이름에 매혹됐다. 원래 시고 산미있는 걸 좋아하기도 하지만 점심으로 기름진 것을 먹어서였는지 베리류의 상큼함을 몸이 몹시 원하는 느낌이었다. 그리하여 몸의 요구에 충실하여 이 커피를 선택했다.

 맛은 정말 특이하고도 특별했다. 도수 없는 와인을 마시는 것 같으면서도 끝에 살짝 도는 시나몬 향까지, 이 특별한 맛이 나를 사로잡았다. 내 동반인도 이런 커피는 생애 처음이라며 매우 흡족해했다.

 스페셜티 커피를 마실 적에 보통 내어주는 카드를 유심히 보는 편이다. 어떤 원두가 어떤 과정을 겪고 탄생하여 내 앞에 와있는 것인지 추적하는 재미가 우선이고, 또 하나는 써있는 글귀를 보는 재미다. 물론 나에게 커피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가게 사장님의 의무는 아니라고 하나, 어쩐지 아무런 정보가 없이 커피 이름만 적혀 있는 종이를 받아들게 되면 찰나의 즐거움을 빼앗긴 느낌에 슬며시 김이 새어 버린다.

Life is Between B and D

 벙커컴퍼니에서 나에게 건네준 카드는 세심하게도 무려 두 장이었다. 하나는 커피에 대한 설명이 적힌 카드, 나머지 하나는 가게의 모토가 적혀진 카드. 그 중 후자의 카드가 마음에 와닿았고 나는 아직도 이를 간직하고 있다.

카드의 메시지는 “Life is Between B and D” 인생은 B(Birth)와 D(Death)사이의 C(Choice)라는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을 차용했다. 수많은 커피숍을 다녔지만 사르트르를 만난 카페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이 말에 매우 공감하는 바다. 인생은 수많은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리고 이날 나는 압구정의 수많은 카페 중 벙커컴퍼니를 선택했고, 수많은 음료 중 Winy Berry를 선택했다. 내 선택이 만들어낸 이날 하루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안겨줬다.

 커피가 너무 맛있어서 집에 돌아오기 전 원두를 한 봉 사왔다. 사온 원두는 케냐 키린야가 키. 마셔본 케냐 원두 중 최고 훌륭했다. 그 외 에티오피아와 콜롬비아가 블렌딩된 #8 Bitter Sweet도 산미와 단맛의 밸런스가 아주 좋다. B와 D 사이 어디 즈음에 있는 난 벙커컴퍼니를 자주 선택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