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 찰리 멍거. 이 환상의 듀오는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씩 들어는 봤을 이름들이다. 그들은 가치투자의 대가들로 가치투자란 쉽게 말해 기업의 내재 가치를 해부하고 현재 시장 가격이 그 가치보다 낮을 때에 투자하는 방법으로, 시장의 변동성 같은 거시적 상황에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주린이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의 투자 스타일은 사실 가치 투자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여느 귀가 얇은 개미 처럼 뭐가 좋다더라, 뭐가 핫하더라 하는 소식에 귀가 팔랑 거리기가 일수고, 마라맛 나는 자극적인 테마주와 이벤트 드리븐 종목을 자주 기웃거리며, 상세한 기업 분석 없는 느낌적 느낌에 의한 투자가 빈번하다. 이런식으로 이 종목 저 종목 하나둘씩 모으기 시작하니 어느덧 주식계좌에 보유한 종목이 30개를 돌파했다. 여기에 채권과 펀드도 따로 운용하니 이정도면 내 주식 계좌는 잡상인의 짐보따리와 다를 게 없다.
날이 추웠던 어느 날, 지인과 저녁을 먹으며 책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그는 나에게 찰리 멍거 바이블을 한번 읽어 볼 것을 권유했다. 그저 가치 투자로 유명한 사람이다 정도로만 알고 있었지 한번도 그의 투자 철학 및 인생 관점을 살펴본 적이 없는 나는 이 기회에 가치 투자 대가의 관점과 생각을 살펴보는 것과 동시에 내 투자 스타일과 방향성에 대해서 점검을 해보고자 책을 집어 들었다.
이 책은 그의 연설, 강연, 주주총회 질의응답을 주제 별로 엮어냈다. 찰리 멍거가 직접 저술한 내용이 아니어서 각 강연, 연설 별로 비슷한 내용이 자주 반복된다. 나는 이 책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크게 4가지로 잡았고, 내 삶에도 조금씩 적용해 볼 노력을 시작하려 한다.
인사이트 1. 멍거의 주식 투자 성공 4단계 프로세스
[1단계] 잘 아는 분야에 집중해라
말 그대로 아는 분야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승산이 높은 사냥터에서 사냥을 해야 사냥에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본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산업 분야는 함부로 뛰어들지 않는다 하였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바이오 및 제약 분야는 개인 투자로 건들지 않기로 하였다. 내겐 그리 승산이 없는 분야다.
[2단계] 정성/정량적 분석과 더불어 경영진 평가를 진행한다.
앞으로 투자를 진행하기 앞서 다음과 같은 요소들을 체크하며 기업을 분석해 보려 한다.
- [정성적 분석] 현재와 미래의 규제 환경, 노동 환경, 공급자, 소비자 관계, 기술 변화로 인한 잠재적 영향, 경쟁력과 취약점, 가격 결정력, 확장성, 환경 이슈, 숨겨진 리스크 등
- [정량적 분석] 현금흐름, 재고, 운전자본, 고정 자산, 과대평가되기 쉬운 영업권 등의 무형 자산, 스톡옵션, 퇴직연금, 퇴직자 의료비 부담 등
- [경영진 평가] 경영진의 능력, 신뢰성, 주인의식, 현금 사용처, 과대 보상 여부, 성장을 위한 성장 추구 여부 등
[3단계] 경쟁우위 파악하기
제품, 시장, 브랜드, 직원, 유통 채널, 사회적 추세 등 모든 분야에서의 기업의 경쟁우위 및 지속 가능성을 평가하는 것이다. 기업의 경쟁우위가 바로 해자(moat)가 되는데, 이는 경쟁사의 침입을 막는 실질적인 장벽이다. 찰리 멍거는 해자에 집착했다.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대부분의 기업은 경쟁적 파괴에 직면한다. 투자자가 바라는 모습으로 장기간 생존하는 기업은 찾기 힘들다는 사실을 역사가 증명한다. 가능한 한 최고의 해자를 만들고 그것을 끊임없이 확장해 나가는 기업을 잘 찾아내야 한다.
[4단계] 내재 가치와 비교
마지막으로 내재 가치를 계산한 후 시장 가격과 비교한다. 결국 가치(value)와 가격(price)을 비교하는 것이 기업 평가의 근본 목적이다. 찰리 멍거는 “훌륭한 기업을 적당한 가격에 사는 것이 적당한 기업을 훌륭한 가격에 사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주장했다.
인사이트2. 격자틀 인식 모형 6단계
격자틀 인식 모형은 역사, 심리학, 수학, 공학, 생물학, 물리학, 화학, 통계학, 경제학 같은 전통적인 학문에서 분석 도구, 방법론, 공식을 빌려와 바느질로 꿰맨 하나의 틀이다. 이는 복잡한 투자 문제에 내재하는 혼돈을 제거하고 명확한 펀더멘털을 도출할 수 있는 분석 도구를 제공해 준다. 6단계는 아래와 같다.
- 다학제적으로 접근하라
- 가장 중요한 모형에 집중하라 (단 80~90개 모형이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
- 모형들을 융합하라
- 충분히 익혀라 (평생 자동으로 떠올라야 한다)
- 일상적으로 사용하라 (망치 든 사람 증후군 피하기)
- 객관적으로 생각하라 (체크리스트 활용하기)
이 6단계를 차례대로 밟아나가기 까지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리고 어려운 작업이 될 것 같다. 말이 쉽지 다학제적 여러 개념을 고찰하며 하나의 틀로 꿰맨다는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하여 나는 첫 단추로 다양한 분야의 책을 하나 둘씩 접하기로 결심했다. 문과인 나에게 물리학, 수학, 화학 등은 사실 절대 편하지 않다. 심지어 두렵기까지 하다. 하지만 나는 두려움에 주저 앉지 않고 미지의 세계로 문을 열고 들어가 보려 한다. 시작조차 않기엔 나는 아직 살날이 많다.

인사이트 3. 멍거의 투자 원칙 체크리스트
이 체크 리스트를 휴대폰에 저장해 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읽으려 한다. 이 10가지를 체크하다가 중간에 지쳐 투자를 포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스쳐가나, 내 인생의 시간과 맞바꾼 근로소득으로 투자하는 것을 상기하면 분명 이 체크리스트를 상세히 따져볼 가치가 있다. 비단 투자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도 도움이 될 만한 말들이다.
1. [리스크] 모든 투자 평가는 리스크 측정에서 시작해야 한다. 평판적인 부분은 더 그렇다.
- 적절한 안전마진을 포함하라.
- 성격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과 거래하는 것을 피하라.
- 추정 리스크에 알맞은 보상을 고수하라.
- 인플레이션과 금리 위험 노출액(exposure)에 유의하라
- 실수를 저지르지 말고 영구적 자본 손실을 피하라
2. [독립] 임금에게 벌거벗었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동화 속에만 있다.
- 객관성과 합리성에는 독립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 다른 사람이 동의하거나 반대한다고 해서 당신이 맞거나 틀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내린 분석과 판단의 정확성이다.
- 군중을 모방하면 평균적인 성과로 회귀하게 된다.
3. [준비] 이기는 방법은 정말 열심히 일하는 것 말고는 없다. 그리고 몇 개의 인사이트를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하라.
- 왕성한 독서를 통해 평생 동안 스스로 공부하라. 호기심을 가지고 매일 조금씩 영리해지도록 노력하라.
- 이기고 싶은 의지보다 중요한 것은 준비하려는 의지다.
- 주요 학문 분야의 인식 모형에 익숙해져라.
- 영리해지고 싶다면 계속 질문해야 할 것은 “왜?”다.
4. [지적 겸손]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지혜의 출발점이다.
- 제대로 정의된 능력범위 안에 머물러라.
- 반대되는 증거를 찾아내고 받아들여라.
- 거짓 정밀성, 거짓 확실성을 위한 갈망에 저항하라.
-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속이지 말라. 그리고 자신이 가장 속이기 쉬운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5. [분석적 엄격함] 과학적인 방법과 효과적인 체크리스트를 사용해서 실수와 누락을 최소화하라.
- 활동과 진전, 크기와 부, 가격과 가치를 분리해서 정의하라.
- 비전(秘傳: 비밀히 전하여 내려옴. 또는 그런 방법)을 파악하는 것보다 분명한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낫다.
- 시장, 거시경제, 주식 애널리스트가 아닌 기업 애널리스트가 되라.
- 리스크와 결과 전체를 고려하라. 잠재된 2차적 또는 고차적 영향을 바라보라.
- 앞으로 그리고 뒤로 생각하라. 항상 아래위를 뒤집어라.
6. [배분] 적절한 자산 배분은 투자자의 최우선 과제다.
- 최고, 최선의 자본 사용처는 항상 차선의 사용처(기회비용)에 의해 판단된다.
- 좋은 아이디어는 드물다. 확률이 당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울어질 때 크게 베팅하라.
- 투자와 사랑에 빠지지 말라. 상황 의존적이고 기회 주도적인 태도를 가져라.
7. [인내] 행동하고 싶어 하는 우리의 편향에 저항하라.
- “세계 8번째 불가사의는 바로 복리다(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절대 불필요하게 중단시키지 말라.
- 불필요한 거래세와 마찰 비용을 피하라. 행동 자체를 위해 행동하지 말라.
- 행운이 찾아왔을 때 경계하라.
- 수익금과 더불어 과정을 즐겨라. 당신이 사는 것은 과정이기 때문이다.
8. [결단력] 적절한 상황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과단성과 확신을 가지고 행동하라.
- 대중이 탐욕을 부릴 때 두려워하고, 대중이 두려워할 때 탐욕을 부려라.
-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기회가 왔을 때 잡아라.
- 준비된 사람이 기회를 만났을 때, 그때가 바로 승부처다.
9. [변화] 변화와 더불어 살고, 제거할 수 없는 복잡성을 받아들여라.
- 당신을 둘러싼 세계의 진정한 본질을 인식하고 적응하라.
-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이디어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기꺼이 수정하라.
-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현실을 인정하라. 특히 싫은 현실일 때는 더 그래야 한다.
10. [집중] 단순함을 유지하고 당신이 하려는 일을 기억하라.
- 명성과 진실성이 당신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1초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그것을 잃을 수도 있다.
- 자만심과 지루함의 영향을 경계하라.
- 세부 사항에 빠져 허우적 대느라 명백한 사실을 간과하지 말라.
- 불필요한 정보나 찌꺼기를 신중하게 제외하라. “작은 구멍 하나가 큰 배를 침몰시킬 수 있다.”
- 당신의 커다란 골칫거리를 직면하라. 골칫거리를 깔개 밑에 감추지 말라
인사이트 4. 오판을 초래하는 25가지 심리적 경향
인간이 어떠한 판단을 내리는데 중요하게 작용하는 심리적 경향으로 멍거는 25가지를 꼽았다. 읽어보면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판단과 결정을 앞두고 내 심리를 지각하고 바로잡기가 과연 그리 쉬울까 싶다. 설령 내 안에 있는 미움/혐오 경향을 알아차렸다 치자. 그렇다고 싫어하는 대상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바로 긍정적 시각으로 바꿔낼 수 있을까? 과연 내 자신이 그만한 그릇이 되는 지에 대해선 다소 회의적이나 적어도 ‘내가 지금 이런 경향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드는 구나’ 정도는 지각할 수 있도록 이 25가지 심리적 경향들은 꾸준히 머릿속에 되 뇌이도록 할 예정이다.
<멍거가 언급한 25가지 심리적 경향 목록>
- 보상/처벌 과잉 반응 경향: 잘못된 인센티브가 나쁜 행동을 조장하거나 합리화하게 만듦
- 호감/애정 경향: 좋아하는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비합리적으로 긍정적인 판단을 내림
- 미움/혐오 경향: 싫어하는 대상에 대해 부당하게 부정적인 태도를 취함
- 의심-회피 경향: 불확실한 상황에서 빠르게 결론을 내리고 의심을 피하려는 성향
- 비일관성-회피 경향: 기존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를 거부하고 일관성을 유지하려 함
- 호기심 경향: 새로운 지식이나 정보를 탐구하려는 본능적 욕구
- 칸트식 공정성 경향: 공정성과 도덕적 의무를 지나치게 중시하는 태도
- 시기/질투 경향: 타인의 성공이나 이익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짐
- 호혜성 경향: 받은 만큼 돌려주려는 심리적 압박감
- 단순한 연계에 영향받는 경향: 연관성만으로 판단을 내리는 오류
- 고통 회피형 심리적 부인: 고통스러운 현실을 부정하거나 외면함
- 과잉 자기 존중 경향: 자신의 판단과 능력을 과대평가함
- 과잉 낙관 경향: 미래를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예측함
- 박탈 과잉 반응 경향: 잃어버린 것에 과도하게 집착하거나 반응함
- 사회적 증거 경향: 다수가 하는 행동이나 의견을 무조건 따름
- 대비-오반응 경향: 비교 대상에 따라 판단이 왜곡됨
- 스트레스-영향 경향: 스트레스 상황에서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림
- 가용성-오평가 경향: 쉽게 떠오르는 정보에 과도한 중요성을 부여함
- 미활용-상실 경향: 사용하지 않으면 능력이나 자원이 쇠퇴하는 현상
- 약물-악영향 경향: 약물 사용이 판단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 노화-악영향 경향: 나이가 들면서 사고와 판단력이 약화됨
- 권위-악영향 경향: 권위 있는 사람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따름
- 헛소리 남발 경향: 의미 없는 말을 반복하며 판단력을 흐림
- 이유-존중 경향: 이유가 명확히 제시되면 설득당하기 쉬움
- 롤라팔루자 효과: 여러 심리적 요인이 결합해 극단적인 결과를 초래함
<독서를 마치며>
찰리 멍거 그가 대중에게 전달하려는 내용은 어렵지 않다. 내용은 쉽게 이해할 수 있으나 관건은 실천이다. 그가 제시하는 투자 프로세스, 격자틀 모형 등은 하루 아침에 뚝딱 만들어내 즉각 실행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나는 그의 조언에서 얻을 것들은 얻고, 나의 스타일은 스타일대로 가미하며 나만의 투자 프로세스와 격자틀 모형을 만들어 나가 보려 한다.
아주 영리해지려고 노력하기 보다 멍청해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만으로 얼마나 많은 장기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 알면 놀랄 것입니다.
그의 말처럼 멍청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나의 작은 다짐이다.
<후속 도서>
- 로버트 치알디니 – 설득의 심리학
- 조지 클레이슨 - 바빌론 부자들의 돈 버는 지혜
- 찰리 멍거 - 가난한 찰리의 연감
로버트 치알디니의 <설득의 심리학>, 조지 클레이슨의 <바빌론 부자들의 돈 버는 지혜>는 찰리 멍거가 직접 추천한 책이다. 과연 어떤 내용이길래 추천하였는지 궁금하여 한 번 읽어 보기로 결정하였다. <가난한 찰리의 연감>은 찰리 멍거가 직접 쓴 유일한 책이자 그의 마지막 책이다. 본래 다른 언어권에서의 출간이 막혀 있었는데, 작년 말 판권 계약을 통해 드디어 국내에 정식 출간됐다. 번역이 이상하다는 말이 많은데 그 점은 감안하고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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