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구억로 126번길 34 (대정점)
- 마신커피: 콜롬비아 엘트리운포 SL28 (노트: 복숭아, 시나몬, 비정제 설탕, 균형 잡힌, 클린, 부드러운 바디)
- 구매원두: 콜롬비아 마라카이 디카페인
직장 생활을 한 지 어느덧 10년, 이에 내 생체시계 역시 10년 동안 이른 아침 기상에 맞춰졌다. 이놈의 생체시계는 여행을 와서도 칼 같이 작동해 여행지에 와서도 이른 아침이면 자동으로 눈을 뜨게 만든다.
티업 시간은 낮 12시. 하지만 아침 7시에 눈을 떠버린 나는 할 일 없이 마냥 누워 있는 것이 괴롭다. 옆에서 똑같이 깨어 있는 나의 언니(직장생활 18년차)는 더더욱 괴롭다. 누워서 휴대폰을 보고 있는 언니에게 슬쩍 말을 걸어 본다. “제주도 모닝 드라이브 어때?” 명목은 드라이브로 포장했지만 실상은 따로있다. 어떻게라도 맛있는 커피 한 잔이라도 더 마시고 싶은 나의 커피 욕심인 것. 동생을 속속들이 다 들여다 보고 있는 K-장녀는 실상을 이미 알고 있지만 어차피 빈둥빈둥 누워있는 것이 괴로우니 동생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침부터 눈을 부릅뜬 자매는 그렇게 아침부터 렌터카에 탑승해 시동을 걸었다. 나는 네비게이션에 타이핑한다. ‘크래커스’

크래커스는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현무암으로 지은 오래된 귤창고를 개조해 만들었다 한다. 그러나 내부로 들어가면 귤창고의 이미지는 온데간데없이, 현무암의 어두운 색이 주를 이루는 굉장히 색다른 공간이 나타난다. 그리고 조그마한 창을 통해 빛이 투과되며 식물과 카페 내부를 비추는데, 나는 이를 보고 빛을 굉장히 잘 이용했다 생각했다. 작은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빛은 되려 어두운 실내에 더욱 큰 존재감을 발하며 강렬한 모습을 띄는 것 같다 해야 할까나. 존재하는 것 속에서의 존재 보단, 부재하는 것 속에서의 존재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이 밝은 곳에서의 밝음보단, 밝음이 없는 곳에서의 밝음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이 빛은 식물을 만나 현무암 앞에 선 식물들이 더욱 짙은 초록의 에너지를 내뿜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내겐 꽤나 매력적인 인테리어 였기에 오랜 시간 내부를 두리번두리번 구경하고 나서야 메뉴판을 보러 카운터로 향했다. 그런데 필터 커피 라인업도 꽤나 매력적이었다. 에콰도르, 니카라과, 케냐 등 쟁쟁한 경쟁자들이 있었지만 콜롬비아 엘트리운포를 낙점, 그리고 홀빈은 콜롬비아 마카라이 디카페인으로 고른 후 결제를 하고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동생의 요구에 같이 발벗고 나서준 K-장녀도 카페가 흥미로웠던지, 자매는 함께 연신 셔터를 눌러대며 커피를 기다리는 시간을 재미있게 흘러 보냈다.
기다리던 커피가 나와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한 모금 마셨다. 노트에 적혀있는 대로 과일의 단맛과 시나몬향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실키하게 느껴졌다. 내가 그간 제주도에서 마신 스페셜티 커피 중 가장 흡족할 만큼 마음에 아주 쏙 들었다. 나는 내 커피를 내려준 바리스타에게 엄지를 치켜 세웠다. 그리고 그녀는 웃으며 나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해주었다.
가끔은 남들처럼 해가 중천에 떠있는 시간에 일어나고 싶은데, 그게 좀처럼 안되는 내가 어쩐지 잠에서 손해보는 것 같아 억울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날 방문한 크래커스의 만족도가 매우 높아 아침 7시에 눈 뜬 것이 전혀 억울하지 않았다. 되려 내 생체 시계에 감사함을 느꼈달까. 조금 더 여유롭게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내면 좋았겠지만 서둘러 돌아가야 했다. 이젠 카페인의 힘으로 파워샷을 날릴 시간이 다가왔다. 집안 구성원의 여러 요구를 맞추느라 고생이 많은 K-장녀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안고, 우린 다시 렌터카에 시동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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