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4화] 여행 가이드의 사심 채우는 제주 커피 투어 (커피템플, 코데인커피로스터스)
나무위키에서 정의하는 여행 가이드란 “관광에 동행하여 관광객들을 도와주는 직업 및 그러한 직업군” 이다. 즉, 관광객들이 안전하고 편안한 여행이 될 수 있도록 관리 및 인솔하는 일이다.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 난 나의 관광객(나의 엄마 이여사)에 동행하여 안전하고 편안한 여행이 될 수 있도록 관리 및 인솔하는 효도 관광 가이드였다.
하지만 이 가이드는 안전하고 편안한 여행을 미끼로 삼아 관광객 몰래 효도 관광 상품에다 사심 가득한 일정을 슬며시 끼워 팔았는데, 이는 바로 커피 투어다. 가이드가 다소 철이 없고 커피 사랑이 심한 탓이다. 어쩌다 커피 중독 딸래미를 낳은 죄목으로 이여사는 그렇게 가이드가 운전하는 차에 실려 강제로 카페로 향했다.
1. 커피템플
- 주소: 제주 제주시 영평길 269 중선농원 커피템플
- 마신커피: You(에티오피아 예가체프+에티오피아 구지 함벨라), 행복(니카라과 핀카 리브레)
- 구입원두: You, 김득구
20대 시절 상암동에서 근무할 적 커피템플의 커피를 자주 마시러 갔었는데, 지금처럼 커피에 정신나간 상태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커피가 정말 맛있다 생각했다. 알아보니 내가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그 상암동에서 제주로 이전하여 지금은 제주에서만 운영되고 있다 했다. 20대 시절 한창 많이 마시던 그 커피를 다시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20대 시절 마시던 커피를 마시고는 다시 20대로 회춘하고 싶다는 다소 황당무개한 생각이 제주 커피템플에 꼭 가봐야겠단 결심을 만들어 냈다. 그리하여 점심을 먹고 호텔로 가는 길에 우리가 그래도 식후 커피는 한 잔 하고 가야하지 않겠냐며 슬쩍 이여사에 운을 띄우고는 신나게 운전을 시작했다.
도착한 커피템플의 외관은 내가 상암동에서 보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다. 상암동의 커피템플은 현대식 건물 안에 화이트 톤으로 단정히 꾸며진 모습이었는데, 제주도에 자리잡은 커피템플은 얼핏 보면 정말 ‘템플’ 같기도 하다. 문을 열고 슬며시 안으로 들어가니, 내부 역시 상암동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사원 혹은 산장 같은 모습이 되었다. 하지만 내 과거의 추억과 달라진 모습이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한껏 더 ‘템플’ 스러워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부가 만석이어서 잠시 기다리니 곧 자리가 생겼다. 우선 이여사를 앉혀 놓고서는 카운터로 가 커피 라인업을 확인했다. 커피 이름이 하나같이 독특했다. You, 행복, 김득구, 보장된 미래, 아름다운 재앙. 무엇을 마셔볼까 행복한 고민을 하다, 마침내 결정했다. ’You’와 ‘행복’으로. 원두가 마음에 들기도 했지만 함께 커피를 마실 You(이여사)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서.
주문이 조금 밀려있던 탓일까, 커피가 나오는데 조금 시간은 걸렸지만 커피잔을 보고는 이내 미소가 지어졌다. 정말 사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디자인의 컵이었는데, 손잡이가 굉장히 독특하게도 컸다. 특히 ‘행복’이 담긴 커피는 손잡이가 엄청나게 컸다. ‘행복’이 담긴 이 컵의 큰 손잡이를 한껏 잡으면, 과연 행복도 크게 잡을 수 있는 건가? 사실 행복을 바로 지금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나는 엄한 커피잔에서 행복을 찾고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최근 이여사는 위가 별로 좋지 않았던 탓에, 카페인을 적게 섭취하고자 커피를 많이 마시지 않았다. 이여사의 행복을 빌며 주문한 You와 행복은 대부분 염치없는 가이드의 위 속으로 꿀떡꿀떡 넘어갔다.
20대 시절 참 맛있다 느꼈던 커피템플의 커피는 여전히 제주도에서도 맛있었다. 하지만 20대로 회춘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커피도 맛있었고 지금 내 30대의 삶은 20대 보단 깊고 진한 맛이 나니까.
2. 코데인커피로스터스(산방산점)
- 주소: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북로 76
- 마신커피: 모로칸 블랙티(온두라스+콜롬비아+에티오피아), 케냐 키리냐가 AA Top
- 구입원두: 케냐 키리냐가 AA Top
이여사와 가파도에서 실컷 노닌 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가이드는 슬며시 관광객에 말을 건넨다. 잠시 휴식도 취할 겸 커피타임을 갖겠 노라고. 그렇게 또 이여사는 가이드의 차에 실려 카페로 향하게 되는데, 이 카페의 이름은 코데인커피로스터스다.
코데인커피로스터스 산방산점에서는 꽤나 가깝게 산방산이 보인다. 산방산은 볼때마다 밀짚모자 같기도 한 것이 참 독특하게 생겼다. 멀찍이 떨어져서 보면 다소 어두워 보이는 것이 모양도 독특해 신비해 보인다. 코데인커피로스터스의 내부는 저 멀리 보이는 산방산과 닮은 구석이 있다. 내부는 블랙톤으로 어둡다. 인테리어 요소로 첼로도 있고 피아노도 있으며 선인장도 있다. 게다가 제주의 돌도 있다. 산방산과 같이 독특한 모양이다. 이 모든 조화들이 다소 신비스러운 느낌을 자아내는 것 같다.
자리를 잡고 무엇을 시켜볼까 메뉴판을 살펴보던 중, 또 하나의 신비한 포인트를 발견한다. 바로 ‘모로칸 블랙티’라는 블렌드 커피다. 이름이 주는 흥미가 있어 모로칸 블랙티와 내가 원래 좋아하는 케냐 키린야가를 각각 한 잔씩 주문했다.
모로칸 블랙티는 한 모금 마셔보니 정말 독특한 맛이었다. 무언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이국적인 풍미가 입안을 가득 메웠다. 처음 느껴보는 맛에 한 모금 마시고는 잠시 멈칫 했으나, 두 모금, 세 모금 마실수록 오묘한 맛의 매력은 두 배, 세 배로 늘어났다. 홀짝홀짝 마시다 보니 어느새 커피 잔이 모두 비워졌다. 이여사는 역시나 이번에도 얼마 마시지 않았다. 시킨 커피의 대부분은 염치없는 가이드의 목구멍으로 흘러 들어갔다. 카페를 떠나기 전 모로칸 블랙티가 매우 마음에 들어 홀빈을 사고자 했으나, 아쉽게도 가게에는 재고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사가기에는 아쉬워 케냐를 한 봉 손에 쥐고서는 우리 모녀는 다음 일정을 위해 카페를 나섰다.
산방산 안쪽을 직접 가본 적은 없다. 산방산의 산방굴과 용머리해안이 그렇게 신비롭고 멋지다던데. 카페를 나와 산방산을 바라보니 문득 다음 제주 여행에서는 이렇게 바라만 보지 않고 직접 가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여사와 같이 오게 된다면 이여사와 함께 산방산엘 갈 것이다. 물론 그때도 가이드는 관광객 몰래 커피 일정을 끼워 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