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으로부터의 사색/미국, 뉴욕 (2024)

[뉴욕 7화] 월스트리트와 황소 동상, 그리고 bullish한 돌격 준비

프로노이아 2025. 3. 2. 09:00

마침내 월가를 밟다”

사회 초년생 시절, 회사 선배들의 주식 이야기에 나도 끼고 싶어 겁도 없이 당차게 주식 투자에 첫발을 디뎠다. 이 주린이 시절엔 거시 경제 및 금융 지식은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채, 누가 뭐가 좋다더라, 어떤 주식이 핫하다더라 하는 카더라 통신에 의존했고, 그러다 보니 각종 테마주 및 단타 위주의 투자를 거행하다 몇 년을 심하게 물리거나 손절한 경우가 상당했다. 이때 비록 돈은 잃었지만 모종의 깨달음을 얻어 금융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나만의 기준과 원칙을 세워 누군가의 의견이 아닌 오로지 내 판단으로 결정한 주식에만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회사 업무상 늘 세계 경제 및 금융에 촉각을 세우고 있어야 하기에, 나는 매일같이 경제 뉴스를 들여다본다. 나의 365일이 월가(월스트리트)가 어쩌니 저쩌니 하는 말들이 가득하다 보니, 세계 경제와 금융의 중심지인 월스트리트에 언젠가 직접 가보고 싶다는 소망을 자연스레 품게 됐다. 그리고 마침내 그 소망을 실현하는 날이 내게 찾아왔다. 매일 같이 뻔질나게 손가락으로 드나드는 월스트리트를 직접 두 발로 밟았으며, 월스트리트에 있는 뉴욕증권거래소(New York Stock Exchange, NYSE)를 드디어 실물로 영접하게 됐다.

Wall Street 푯말
뉴욕증권거래소(NYSE) 입구
뉴욕증권거래소(NYSE) 전경

이탈리안 조각가의 선물, 돌진하는 황소”

월스트리트 부근엔 황소 동상, 일명 ‘돌진하는 황소(Charging Bull)’가 명물이다. 이 동상은 이탈리아 출신 조각가 아르투로 디 모디카(Arturo Di Modica)가 1987년 10월 전 세계 주식 대폭락의 시발점이 된 블랙 먼데이 사태에 영감을 받아 제작했다. 주식 시장에서 상승 강세장은 황소가 공격할 때 뿔을 하늘로 들어올리는 모습을 빗대 Bull Market이라 표현하며 하락 약세장은 습성이 느리고 공격 시 발톱을 아래로 깎아 내리는 곰에 빗대 Bear Market이라 칭한다. 아마도 디 모디카는 대폭락장에서 다시 Bull Market을 기대하며 이 황소(Bull) 동상을 기획했던 것 같다. 그는 2년간 35만 달러의 자비를 들여 이 작품을 만들었고 1989년 12월에 뉴욕증권거래소 앞 크리스마스 트리근처에 기습적으로 이 동상을 설치했다. 처음엔 불법 설치물로 간주되어 경찰이 압수했지만, 시민들의 항의로 인해 현재의 위치인 볼링그린 공원으로 옮겨져 영구 설치되었다.

돌진하는 황소의 궁댕이”

돌진하는 황소의 코와 뿔을 문지르면 금전운이 생긴다는 미신이 있다. 황소 동상을 찾아가니 이미 어마어마한 관광객들이 금전운을 빌며 황소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저들처럼 기다려 볼까 어쩔까 고민을 하다가 나는 꿩 대신 닭이라고 뿔 대신 황소 궁댕이를 슬쩍 만져보는 것으로 스스로 합의를 봤다. 비록 뿔은 아니었지만 궁댕이라도 만져봤으니 적어도 고점에선 못 팔아도 어깨선 정도에선 팔고 차익실현 좀 할 수 있을 러나 하는 기대와 함께.

돌진하는 황소의 뿔을 만지며 사진을 찍고 있는 관광객

인생은 Bullish하거나 혹은 Bearish하거나”

나는 늘 인생은 사인, 코사인 곡선과 같다고 생각했다. 이 곡선들 처럼 인생 역시 상승 구간이 있으면 곧 하락 구간이 나타나고, 바닥을 쳤으면 다시 상승하는 구간이 나타난다 봤기 때문이다. 이는 주식 시장과도 일맥 상통하는 바가 있는데, 인생은 Bullish(상승장 추세)했다가도 Bearish(하락장 추세) 해지는 패턴이 반복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월스트리트에 방문했던 이 기간은 아마도 인생이 Bearish한 구간이었을 것이다.

“So bearish, but soon to be bullish”

약세장에 대응하는 전략은 사람마다 가치관에 따라서 다르다. 공격적인 투자자는 오히려 기회라는 판단으로 주식을 적극적으로 매수하는 반면, 보수적 투자자는 매도를 하거나 매수/매도를 완전 중단하고 사태를 관망한다. 나는 아무래도 보수적인가 보다. 투자도, 인생도 약세장 속에선 관망하는 자세를 취한다. 하지만 그저 무기력한 관망에서 그치진 않겠다. 잠시 숨을 고르며 기를 모은 후 잔뜩 성난 황소처럼 돌진해 나가겠다. 스리슬쩍 만진 황소의 궁댕이가 나에게 Bullish한 힘을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