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성수동 이월로스터스] 코스타리카를 마시며 구원을 외치다

프로노이아 2025. 1. 22. 19:00
  • 방문지점: 이월로스터스 성수점 (서울시 성동구 서울숲2길 46)
  • 마신커피: 코스타리카 코라손 데 헤수스 밀레니오 내추럴
  • 노트: 애플사이다, 시나몬, 레드커런트, 베리

어느 추운 날, 점심을 먹고 서울숲 산책을 가려고 사무실을 나왔지만 생각보다 뼈를 때리는 추위가 덮쳐와 다시 기어 돌아갈까 하는 내적갈등이 일어났다. 그러나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친다고 이왕 나온 거 가까운 곳에서 커피 한잔이라도 마셔야 겠어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추위를 뚫어낸 나의 노고가 허망하게도 당초 목적지였던 카페가 문을 닫았다. (그날은 월요일이었고 보통 서울숲의 많은 가게들이 월요일엔 휴무다) 잠시 동공지진이 일어났지만 이곳은 카페가 차고 넘치는 서울숲이다. 어디든 발길을 돌리면 카페는 있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덜 억울했다. 그리고 난 잠시의 고민 끝에 오랜만에 이월로스터스에 가기로 결정했다. 이월로스터스는 문짝이 조금 특이하다. 보통 가게들에 비해 2배 만한 대문을 가지고 있는데 어쩐지 문짝이 2배 더 크니 2배 더 환영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월로스터스 입구
이월로스터스의 거대한 출입구
매장 내부

이날 마실 수 있는 필터커피 종류에는 과테말라, 인도, 코스타리카 이렇게 3가지 옵션이 있었다. 인도는 대개 내 취향이 아닌지라 손이 잘 안가는 편이고 과테말라, 코스타리카는 모두 내가 좋아하는 원두라 두 가지를 두고 치열히 고민한 끝에 나는 코스타리카를 골랐다. 이유는 원두의 이름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원두의 이름은 코스타리카 코라손 데 헤수스 밀레니오(Costa Rica Corazon De Jesus Milenio)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도 아니면서 Jesus를 보니 뭔가 경건해졌다고 할 수 있을까나.

메뉴판
팔고 있는 원두들
내부 인테리어
베이커리류

주문을 하고 잠시 기다리니 커피가 나왔다. 알록달록하니 예쁜 컵을 들고 나오는데 문득 왜 카페 이름이 이월일지 궁금했다. 사장님 생일이 2월인가? 만약에 내가 카페를 오픈한다면 난 노벰버 로스터스로 지어야하나? 아니면 사장님한테 특별한 일이 있었던 달인가? 나한테 특별한 달은 언제지? 그래도 역시 생일이 있는 노벰버가 제격인가? 혼자 의식의 흐름대로 생각 하다 결국 홈페이지를 찾아봤다. 큰 이유는 없었다. 2월에 오픈하여 이월 로스터스라 한다.

알록달록 예쁜 컵에 담겨진 코스타리카

보통 코스타리카의 볼칸 아줄을 좋아하는데 볼칸 아줄은 굉장히 쥬이시(Juicy)해서 농밀한 과일주스를 마시는 기분이다. 하지만 이 지저스 커피는 과일 맛이 나면서도 시나몬 향이 들어가 과일주스 보단 마치 과일주(酒)를 마시는 느낌이 가득했다. 예수님이 성찬식에서 포도주를 당신의 피로 비유하며 새 언약과 구원의 상징으로 사용하셨다는데, 지은죄가 많은 나는 술을 안 마시니 대신 Jesus 이름이 든 이 코스타리카 한잔을 마시고 구원과 은혜를 구해봐야 겠단 다소 양심 없는 생각이 들었다.

[전도서 9장 7절]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너의 하는 일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