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기보다 차라리 두려운 존재가 되라 (Feat. 마키아밸리)
"나는 왜 이 책을 선택하였나"
나는 서양철학 보다는 본래 동양철학이 편하게 느껴지는데 여기에 큰 이유는 없다. 그저 학창시절부터 동양철학에 대한 노출도가 많았다 보니 자연스레 동양철학 관련 서적을 많이 읽게된 탓이겠다. 그러다 우연히 이 책을 알게되었고 제목이 매우 흥미로웠다. 사랑받기 보다 차라리 두려운 존재가 되라니. 내가 사랑받기 위해 그간 얼마나 노력했는데. 게다가 마키아벨리 군주론 이라니. 군주론 금지 서적 아니었나?
서양철학에 대해 많이 아는 바는 없어도 그간 간간히 사르트르, 니체, 플라톤 등 핵심사상은 궁금하여 직접 찾아본 적은 있다. 반면 마키아벨리는 내 머릿속에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었고 이에 군주론 역시 제대로 봐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내 곰곰히 생각해보니 왜 그의 주장은 당시 배척 당한 것이었나, 내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부정적 선입견으로 멀리했던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리하여 너무나도 제목부터가 내가 추구했던 삶과 모순된 이 책이 궁금해 졌고 이내 직접 구매하여 읽어봤다. 아래는 나의 생각과는 관련 없는, 그저 책의 내용을 내 나름대로 요약한 것이다.
"겁을 상실하자"
<군주론>을 일관되게 지배하는 하나의 세계관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운명’과 ‘자기 자신의 역량으로 고군분투하는 개인’의 대결이다.
- 포트투나(Fortuna) : 운명
- 비르투(Virtu) : 개인의 역량
즉, 포르투나와 비르투가 불꽃 튀기며 싸우는 곳이 이 세상이고, 여기에서 승리하는 자가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막상막하의 싸움 앞에 사람들의 태도는 흔히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 또 하나는 겁 없이 과감하고 대담하게 도전하는 것. 마키아벨리는 대담함 쪽에 무게를 싣는다. 소위 ‘겁을 상실한 상태’가 되지 않으면 사람은 변화와 도전 앞에서 망설일 수 밖에 없다.
미래를 잊고 현재에 모든 관심을 쏟을 수 있는가에 따라 지금 당장의 창조성 발휘 여부가 결정된다. 창조적인 사람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예측성도 내던져 버리고 현재에만 완전히 몰입하며 즐긴다. 그러므로 그들은 융통성을 발휘해 변화하는 상황과 시시각각 생겨나는 문제들의 요구 사항에 자신을 맞출 줄 안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 → 겁의 상실(대담성) → 창의성 발현 → 문제 해결 능력 강화
"때를 기다리는 지혜"
“질서가 잡힌 견고한 도시를 가지고 있으면서 시민들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 군주는 어떠한 공격에도 안전하다. 미움을 받지 않는 군주는 어떠한 공격에도 안전하다. 그를 공격하는 자는 누구나 수치스러운 퇴각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면 어떤 말과 행동을 한다 해도 백해무익하다. 이럴 때는 마음의 파도가 가라앉고 평정과 논리를 회복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현명하다. 아울러 당장 어떤 결정을 내리거나 행동을 취하는 것의 이득이 명백하지 않다면, 일단 한 걸음 물러서서 새로운 기회를 노리는 것이 훨씬 더 좋은 방법이다. 질서가 잡힌 견고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부정적인 마음이 드는 힘든 상황일 수록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고 현재의 고난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주입하며 의지를 다지는 작업이 필요하다. 즉, 때를 기다리며 마음을 공고히 다지는 작업이 사전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악한 본성을 냉혹하게 직시하라"
“막상 그럴 필요가 별로 없을 때 사람들은 당신을 위해서 피를 흘리고, 자신의 소유물, 생명 그리고 자식마저도 바칠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당신이 정작 그러한 것들을 필요로 할 때면 그들은 등을 돌린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은 원래 변덕스러운 존재’라는 사실을 가슴에 새기라고 한다. 그리고 배신은 인간 개인의 도덕성이나 윤리적 결심에 의해서 자제되지 않으니 차라리 그것을 능동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한다. 즉 병에 걸리기 전에 백신을 놓아서 오히려 스스로 제어할 수 있도록 만들라는 이야기다.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위선적인 데다 기만에 능하며 위험을 피하려 하고 이익에 눈이 어둡다. 사람들은 당신이 은혜를 베푸는 동안만 당신에게 온갖 충성을 바친다.”
마키아벨리는 아예 ‘인간은 원래 배신하는 존재’라는 낙인을 찍고 시작한다. 차라리 처음부터 순진한 기대 따위는 집어치우는 것이 우리의 정신 건강에 더 좋다는 이야기로 들릴 법하다.
"주변인들의 배신, 믿었던 관계의 훼손 등의 문제 발생시 대처하는 방법"
1. 인간은 원래 변덕스러운 존재에 배신하는 존재다.
배신자는 스스로를 안전하게 보호하면서 배신에 이르게 되고, 현실 감각이 사라진 사각지대에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한 것이라고 합리화 한다. 배신의 당사자는 그 배신을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인간사회에서 배신이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설사 나에게 일어난다고 해도 이성적으로는 지나치게 좌절할 필요가 없다.
2. 배신에 스스로 제어하자
“많은 권력자가 잔인한 조치를 했음에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러한 조치들이 잘 이루어졌는가 또는 잘못 이루어졌는가에 따라서 좌우된다. 그러한 잔인한 조치들이 ‘잘 이루어졌다’는 것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일거에 모두 저질러진 것을 말하며, 그 이후에는 지속되지 않고 자신의 국민들에게 가능한 한 유익한 조치로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잘못 이루어졌다’는 것은 처음에는 빈도가 낮았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감소하기 보다는 증가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마키아벨리에 의하면 ‘잘 이루어진 잔인함’은 처음에 한꺼번에 행해지고 점차 강도가 약해지는 것을 말하며, ‘잘못 이루어진 잔인함’은 처음에는 약하다가 점점 그 강도가 높아지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잔인함이란 ‘잔인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철저한 주변관리와 자기 관리’일 것. 대체로 자신의 태도를 뒤바꾸어 배신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그렇게 행동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즉, 철저한사람, 쉽지 않은 사람이라는 모습만 보여줄 수 있어도 어느 정도의 배신은 예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사랑받기보다 차라리 두려운 존재가 되라"
“군주가 음모에 대비할 수 있는 최선의 안전책들 중 하나는 시민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 것이다. 시민이 군주에게 호감을 품고 있다면 군주는 음모에 대해서 걱정해야 할 이유가 없지만, 시민이 적대적이고 그를 미워한다면 매사에 모든 사람을 두려워해야만 한다.”
“인간은 사랑을 베푸는 자를 해칠 때보다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자를 해칠 때 더 주저하게 된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일종의 감사의 관계에 의해서 유지되는데, 인간은 악하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을 취할 기회가 생기면 언제나 그 감사의 상호관계를 팽개쳐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려움은 항상 효과적인 처벌이 되며 공포를 잘 유지할 수 있다. 그리고 실패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마키아벨리는 미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으로 두려움을 제시했다. 단, 이때의 두려움은 누군가에게 위력을 행사하거나 공포, 불안에 빠뜨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존경’에 가깝다. 두려움과 존경은 한 몸을 이루고 있다. 견고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주변의 잡음을 차단하며 자신을 잘 통제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존경을 받고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모두 태워 버리거나 따뜻하거나, 불꽃(갈등)을 대하는 자세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갈등과 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힘보다 욕구하는 힘이 언제나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도 스스로 만족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불만을 느끼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것 외에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어떤 사람들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에 서로 반목해 싸움이 일어난다.”
갈등은 불꽃을 닮았다. 잘못하면 누군가를 해칠 수 있는 분노의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잘만 관리하고 조정한다면 오히려 갈등 상황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상대방의 심리와 욕망을 알아챌 수 있고, 그것을 활용하여 관계의 반전을 가져오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는 갈등 그 자체에 대해서도 절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금기시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와 갈등이 생긴다는 것은 상대방의 취향, 성격, 욕망의 크기 등을 알아낼 수 있는 매우 좋은 기회이며, 그것을 잘 활용하면서 전략의 변화를 꾀할 수 있다.
다만 갈등이 불꽃과 다른 점은 종류가 다양하다는 점이다. <군주론>에서는 딱히 해결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애매한 갈등에 대처하는 방법을 제시하는데, 이는 바로 ‘시간 끌기’다. 시간을 끌기 시작하면 상대방의 의지가 꺾이기 시작하고, 상대는 심리적으로 다급해지면서 설사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진다.
감정은 밀려왔다가 반드시 밀려 나가는 특성이 있다. 파도가 밀려오는 모습을 딱히 기뻐해야 할 이유가 없듯, 파도가 밀려가는 모습에도 특별히 슬플 이유는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감정에 대해서 아주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를 갖추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감정에 압도당하지 말고 그 감정이 나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캐치해 내는 것이 현명하다.
"운명과의 전투력을 끌어올리는 세 가지 작전"
“영토 확장의 욕구는 매우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욕구이며, 유능한 자들이 이를 수행할 때 그들은 항상 칭송 받는다. 설사 칭송받지 못하는 경우에도 적어도 비난을 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성취할 역량이 없는 자들이 경우를 가리지 않고 이를 추구하려고 할 때 그것은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실책이 된다.”
즉 실력이 없으면 아예 나서지 말라는 이야기다. 실력이야 말로 사회적인 생명이라는 것이다. 실력을 끌어올리는 전략은 아래 세 가지와 같다.
① 시나리오 플래닝
고대 그리스의 메갈로폴리스의 장군의 예를 들어 그는 항상 끊임없이 지형을 살피고 관찰과 상상에 기반한 시나리오 플래닝을 했다고 말한다. ‘누가 유리하지? 상대가 어떻게 공격하지? 나는 어떻게 후퇴하지?’와 같은 시나리오다. 즉 상황과 결과를 계속하여 예측하고 이를 토대로 사전에 문제의 위험을 현저하게 줄이는 행위이다.
② 성품 모방
“지적인 훈련을 위해서 군주는 역사책을 읽어야 하며, 특히 위인들의 행적을 조명하기 위해서 읽어야 한다… 과거의 위대한 인물들 역시 찬양과 영광의 대상이 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그들의 선배들을 모방하려고 했다.”
의사이자 컨설턴트인 맥스웰 몰츠는 한 사람을 정해 한 달간 철저히 연구하라는 말을 남겼다. 그 사람이 생각하는 방법에 너무나 익숙해져서 마치 그 사람과 마주 앉아 있는 것 처럼.
③ 경각심 유지
무언가 한번 방향이 잘못되면 아무리 열과 성을 다해도 결과가 나쁠 수 있다. 이는 경각심을 곤두세우는 것으로 해결할 수 밖에 없다.
"책을 읽고 난 뒤의 생각"
저자가 현대적으로 많이 해석해 놨다는 생각이 든다. 원전을 읽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내가 제대로 군주론을 읽은 것이 맞나? 싶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런 부분이 고전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고전은 오히려 변화무쌍하다. 카멜레온은 카멜레온 자체는 그대로지만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색을 바꾼다. 고전도 마치 카멜레온 같다. 그 안의 사상은 절대 죽지 않으나, 100년 200년 후엔 그 시대상에 맞는 인사이트를 제공하듯.
마키아벨리의 철학은 살기 팍팍한 오늘날에 현실적인 지침을 준다. 다소 유토피아 같은 이상향을 꿈꾸며 사는 내가 그래서 지금 사는게 괴로운지 모른다. 모든 부분에 공감할 수는 없어도 분명 내가 새롭게 시도해볼 법한 삶의 태도는 있다. 좋은게 좋은거라 생각하며 여지껏 살아왔는데 세상은 별로 그러하지 않은 것 같고 그 속에서 상처받는 건 나 하나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요즘은 어쩐지 내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며, 사람을 바라보는 방식에 좀 변화를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생각 와중에 때마침 진지하게 생각해 볼법한 글을 읽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