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리본 신발을 떠나보내며, Amor Fati.
어느 맑은 가을 날, 며칠 후 떠날 출장길에 들고 가야 하는 제본 더미를 찾으러 인쇄소로 향했다. 사무실을 잠시 벗어난 데서 나온 일말의 해방감이 아침 저녁 큰 기온차로 인해 몸살에 걸려 온 몸이 천근 만근이었던 나를 약간은 가볍게 해주는 느낌이었다.
인쇄소는 사무실로부터 편도로 15분, 가는 방법엔 다양한 길이 있고 나는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아무렇 게나 걸었다. 인쇄소에 도착해 인쇄는 고르게 잘 되었는지, 스프링을 삐뚤지 않게 잘 끼워졌는지 체크하고 A4 박스에 주문한 20권을 모두 차곡차곡 담아 다시 사무실로 길을 나섰다. 원래는 짐 때문에 택시를 타고 돌아올 계획이었지만, 내 생각보다 제본 더미가 무겁지 않았고 5분이라는 찰나도 좋으니 조금만 더 바깥 세계의 자유를 느끼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 잡혀 걸어서 사무실에 복귀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박스를 짊어 지고 그렇게 다시 15분을 걸어 사무실에 도착. ‘컨디션 안 좋은 와중에 그래도 잘 걸었다!’며 스스로를 대견히 여기며 사무실용 슬리퍼로 갈아 신으려는 순간 경악을 금치 못하였는데, 그 이유는 내 새 신발에 대문짝 만하게 묻은 페인트 자국 때문이었다. 도대체 어디서 묻었는 지도 모르겠는 이 난데없는 불청객은 무엇인가?
난 이 신발을 사고서 2~3번 신은 게 전부인데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왜 하필 페인트가 묻어도 이 신발이었나요, 헌 신이었으면 어디가 덧났나요? 신발을 바라보며 나는 잠시 내가 믿는 신을 탓했다. 그리곤 곧 그 화살을 다시 나에게로 돌려 신발장에 그렇게 많은 신발이 있는데 넌 왜 하필 오늘 이걸 신었냐며, 인쇄소로 가는 길은 수십가지가 있는데 왜 넌 왜 하필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 그 길로 가서 새 신발을 이지경으로 만들었냐며 사무실 한 켠에서 혼자 괴로움을 머리위에 한 웅큼 짊어지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대견히 여겼던 찰나의 나는 온데간데없고 온갖 자괴감과 짜증만이 가득한 나만이 남았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열심히 세제를 묻혀 박박 문질러 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어 결국 마지막 심폐소생술로 전문 세탁 업체에 의뢰했다. 하지만 업체에서는 가망이 없다며 처참히 사망 선고를 통보했다. 공장에서 태어났을 땐 자기와 꼭 맞는 발을 가진 신데렐라를 만나 제 한 몸 닳도록 넓은 세상에 디뎌질 꿈을 꾸었을 텐데. 못난 주인을 만난 탓에 왕리본을 달고 당차게 세상에 나온 나의 새 신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운명을 달리하였다.
니체의 운명에 대한 사랑은 삶에서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모든 것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태도이다. 필연적인 것을 아름답게 본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곧 자신의 운명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마음자세이다. 비록 삶이 우리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으로 가득 차 있을지라도 주어진 길을 담담히 걸어가는 것이다.
<마흔에 읽는 니체(유노북스) 中, 장재형 저>
아모르 파티(Amor Fati),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니체 사상의 중심을 이루는 하나다. 삶이 고달프고 괴로울지라도 내 운명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라는 의미로 나는 받아들인다. 김연자 선생님도 신나게 아모르 파티를 외치시지 않았던가.
세상 만물은 태어날 때 부여된 역할과 제 수명이 있다. 이것을 운명이라 부를 수 있겠다. 내 왕리본 신발은 서울에 살며 240mm의 발 사이즈를 가진 나에게 올 운명이었다. 그리고 매우 짧게 서울 구경을 할 운명이었다. 이게 다였다, 그의 운명은. 나는 매우 짧았던 그의 운명을 슬퍼할 게 아니라, 그를 지키지 못한 내 자신을 비난할 게 아니라, 그의 운명을 긍정하고 받아들이며 맡은 바 역할을 잘 하고 떠난 그의 업적을 높이 사야 한다. 그리하여 나는 그에게 마지막 편지를 띄우며 잠시 추모를 한 뒤 기쁘게 그를 보내주기로 이내 결심하였다.
‘잘가라 나의 왕리본 신발, 너는 너의 소임과 역할을 짧지만 충분히 다해 주었다. 짧은 생애는 너의 운명이었고 나는 더 이상 너의 죽음에 대하여 일방적으로 나에게 책임을 묻고 괴로워하지 않기로 하였다. 고이 잠들거라.’
그리고는 나의 운명에 대하여도 잠시 생각해 본다. 어제 한 선택이 오늘의 내가 되었고, 오늘 한 선택이 내일의 내가 되겠지. 그리고 나의 선택에 따라 펼쳐진 나의 운명에 대하여 자책하지 말고, 스스로를 비난하지 말고 긍정으로 맞이해 담대히 맞서 나가기로 다짐해 본다.